외국인에게 꽌시는 없다, 미엔즈는 정말 중요하다
1. 꽌시(关系, 인맥)에 관해
중국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꽌시关系(사람 관계, 인맥)를 자주 언급한다. 꽌시는 자신이나 가족, 친척을 통한 인맥을 말하기도 하고 사업 거래상 파트너십을 의미하기도 한다. 친척의 채용 청탁도 꽌시이고 뇌물을 주고 서로를 봐주는 관행도 꽌시이다. 한국 사람 눈에 중국인의 꽌시는 합법과 불법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을 위태롭게 오고 간다.
중국인은 마작을 좋아한다. 금요일 저녁이면 삼삼오오 모여 마작을 즐기고는 한다. 때로는 이런 '마작 파티'에 공급 업체 영업 담당을 부른다. 영업 담당은 왠지 게임에서 계속 진다. 밤새도록 마작을 하다 보면 영업사원은 많은 돈을 잃고 영업사원을 부른 사람들은 당연히 돈을 많이 딴다. 간접적인 뇌물이다. 이것이 불법인가 아닌가. 꽌시를 맺기 위해서는 이런 불법과 합법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엄격한 한국 본사 기준이 적용되는 한국 비즈니스맨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에서 근무하며 한국인에게 중국의 꽌시의 중요성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느꼈다. 중국은 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공개적으로 의법치국依法治国(법치주의)를 주장하고, 老虎苍蝇一起打(부패한 호랑이-고위관료, 파리-하급관리를 다 같이 때려잡자)를 외친다. 실제로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周永康이 뇌물 수수 등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는 등 많은 관리들이 부패 혐의로 날카로운 사정의 칼날을 받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내가 어제 느그 서장하고 밥도 먹고, 사우나도 하고, 다 했어 임마".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위해 '빽'을 찾는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이렇게 외국인인 직접적으로 정부 고위 관료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특혜 요구하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초에 꽌시는 '될 듯 말 듯한 일'을 되게 만드는 수준이지 '안 될 일을 되게 만드는' 마법이 아니다. 꽌시를 통해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그 사람도 조직, 특히 상사에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저 '우리가 남이가, 잘 좀 해줘'로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꽌시는 상호적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밥 몇 번 같이 먹었다고 꽌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위치와 권한이 비슷할 때, 서로 주고받을 능력이 있을 때 꽌시가 효력을 발휘한다. 적어도 친인척을 통하지 않은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꽌시는 그렇다. 정부와 기업은 명백한 '갑'과 '을' 관계이다. 국가의 권력이 막강한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로부터 꽌시를 통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면 방법은 뇌물뿐이 없다. 외국 기업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이라면 꽌시를 찾아 열심히 정부 사람과 밥을 먹기보다는 회사에서 불법으로 꼬투리 잡힐 일이 없는지를 다시 점검해보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2016년, 2017년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이 한창이던 당시 안전국, 세무국, 해관, 공안, 소방국, 규획국 등등 모든 정부 기관이 우리 회사를 방문하여 점검을 했다. 이렇게 중앙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오는 상황에서는 꽌시고 뭐고 다 무용지물이다. 외국인에게 꽌시는 없다.
2. 멘즈(面子, 체면)에 관해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검토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조직 개편으로 영업의 일부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고민한 새로운 고객사와 서너 가지 협력 아이템을 논의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적극적이었다. 희망이 보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추가 논의하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담당 직원에게 왜 그런지 물었다. 직원은 머뭇거리며 다시 알아보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직원에게 다시 물어봤다. 직원은 그제야 난처하다는 얼굴도 진실을 이야기했다. "부장님의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고객사는 바로 앞에서 대놓고 거절을 할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한 겁니다". 초보 부장의 제안은 어설펐고 고객사는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단지 체면을 위해 직접적인 거절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지 직원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체면을 생각해 내가 두 번 묻기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절대 당사자 앞에서 그 사람의 체면을 깎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모르면 혼자 바보가 될 수 있다. 거절을 하더라도 바로 앞에서 하지 않는다. 면담 후 아래 직원을 시켜 다른 이유를 들어 어렵다는 표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체면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의 미엔즈面子(체면)는 그 이상이다. 이걸 무시했다가는 정말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중국에서 미엔즈 살려주면 친구, 미엔즈를 깎으면 원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젊은 직원들은 미엔즈는 옛말이라며 현대 사회에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 정도만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고 미엔즈를 중요시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자부심이 강한 중국인들은 여러 사람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 있다. 한 번은 실수를 수차례 반복하는 직원에게 참지 못하고 회의 석상에서 화를 내며 책임 지고 시말서를 쓰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직원은 다음날 나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당황스러웠다. 화를 못 참은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떠나는 이유가 다른 계획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도 담당 과장도 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부장을 굳이 나쁜 사람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말하자면 나의 체면을 위해서였다. 떠나는 마당에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지만 중국인에게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체면을 지켜주려는 의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후 다시는 공개적으로 직원을 지적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꼭 해줘야 할 말이 있다면 회의실로 불러내어 개인적으로 전했다. 평가 결과 등 나쁜 소식을 전해주어도 직원들은 대부분 "나는 괜찮다. 이렇게 별도로 설명해 주니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체면을 살려줬으니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부장의 체면도 살려주는 것이다.
부장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체면 깎는 행동도 극도로 삼갔다. 한 번은 모두가 나누어 써야 하는 비용을 한 부서에서 부정한 명목으로 몰래 과다히 사용한 내용이 발각되어 회사가 뒤집힌 적이 있다. 나는 과장들을 모아놓고 울분을 토했다. "그 한 과장 때문에 다른 과들이 쓸 수 있는 돈이 하나도 안 남게 되었다. 너희들은 억울하지도 않냐?" 관련 직원이 징계로 회사를 떠날 만큼 큰 일이었다. 나는 당연히 나와 같이 '어찌 그럴 수가 있냐?'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회의실에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도 없었다. 놀랍게도 단 한 명도 그 문제 일으킨 직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다. "뭐지, 내 돈을 빼앗겼는데 억울하지 않은가?" 알고 보니 다 같이 모인 장소에서 그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그 사람을 비난하는 행위는 금기였다. 한국인의 '뒷담화' 문화와는 대조적이었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심을 슬쩍 드러내 보이기는 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절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 중국인의 체면 중시 문화는 충격적이었다.
루쉰은 소설 '아큐정전'을 통해 중국의 전통적인 체면 문화를 비판했다. 주인공 '아큐'는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는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녀석과는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정신승리법을 개발한다. 비참한 현실과 지켜야 하는 체면 사이를 정신승리법으로 메꾼 것이다. 중국은 많이 변했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중국인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외국인이 중국인을 대할 때 합리적인 존중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중국인이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 중국인이 당신 덕에 많은 사람 앞에서 체면을 크게 차릴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까지 해준 당신의 체면을 위해 자신의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인의 체면 문화를 고려한 비즈니스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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