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세이,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
<젊은 ADHD의 슬픔>을 쓴 정지음 작가는 일상을 빈틈투성이로 만들어 매사 문제를 일으키는 자신의 병을 보듬어 안아 우뚝 선 이였다.
과집중, 주의 산만, 충동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ADHD로 인해 작가는 시간 약속, 청소와 같은 간단한 일에서조차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잊거나 잃어버리거나, 잃어버린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삶.
작가는 성인 ADHD 진단 후, 자신을 ‘불완전한 괴물’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파괴적으로 무능력해서 자신을 망치는 식으로만 완전해지는 괴물. 그럼에도 결코 자신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비틀린 조각. 그 조각을 품고 있는 한 삶은 불안하게 휘청일 것이었다.
본인의 잘못과 상관없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였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로도 보여 남들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도 힘든 질환이다. 작가는 술과 우울, 슬픔에 잠겨 무수한 밤을 후회와 원망, 자책으로 지새운다.
하지만 작가는 긴 방황과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하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저마다의 모자람은 각자의 고유함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대로 누구나 조금씩은 미쳐있는 세상 아니던가.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_101
우리는 서로에게 끝내 완벽히 가닿을 수 없는 간극을 지닌 존재들이기에 각자의 고유함은 오직 자신만 풀어낼 수 있는 수수께끼와 같다. 수없이 많은 오답을 온전히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자신뿐이다.
결국 나에겐 나만이 유효하고 고유하다. 나는 너무 나답게 아름다워서 모든 타인에게 해석에 대한 실패를 주었다. 최후의 오해들을 아우르는 해답은, 그것들을 아예 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오로지 내게만 나를 해명한다._223
책에는 ADHD 진단 후 깊은 우울과 슬픔에서 자신을 긍정하기까지의 여정이 한치의 포장 없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술에 의지해 우울을 버티고, 인간관계에 있어 성숙하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 과오마저 가감 없이 드러낸다. 포장이라면 오직 톡톡 튀는 위트뿐.
하지만 그 위트 이면의 슬픔과 언제고 진행형일 ADHD와의 투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작가가 ‘불완전한 괴물’이라 여기던 자신의 존재를 고유함으로 받아들이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위안을 건네는 문장들이 더욱 뭉클하게 와닿는다.
ADHD가 질환명이라기보다 우리를 우리이도록 하는 암호 같아요. 열일곱 번째 MBTI 같기도 하고요. (…) 어떤 사람이 매일매일 실수한다는 건 매일매일 세상을 배워 간다는 말과도 같죠. (…) 저의 모자란 문장들도 여러분께 같은 마음을 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서 위로하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저는 유명세와 상관없이 성공한 작가일 거예요._185~187
작가의 고유함이 오래도록 빛을 발하기를.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해 그늘에 숨어있던 가지각색의 고유함이 양지로 나와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정지음 작가가 ADHD로부터 자신의 삶을 구원한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은 단연 자신의 질환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작가는 ADHD를 자신의 삶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단점을 외면하기보다 오히려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그 이면에 숨겨진 반전의 키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는 망각이 신이 주신 선물이고, 나는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든 것 없이 가벼운 인생’은 관점을 바꾸자 ‘잊음으로써 가뿐해지는 인생’이 되었다._19
삶은 본래 흑과 백이 명확히 나뉘기보다는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한 회색지대가 더 많은 법이다. 물건 하나를 사도 완벽히 좋기보다는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한 군데는 있기 마련. 전반적으로 아쉬워도 한없이 저렴한 가격이 그 모든 걸 무마시키기도 한다.
ADHD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삶은 0 아니면 1이라는 식의 논리로 해석될 수 없다. 어떤 인생이든 싹뚝 썰린 단면에서는 ‘좋다’와 ‘나쁘다’의 기하학적 마블링이 나타날 것이다._99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지음적 사고’가 아닐까 싶었다. 나라는 존재를 흑 또는 백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보다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가 있는 ‘회색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 그렇다면 유연해진 우리의 존재만큼, 더욱 많은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러한 ‘지음적 사고’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스킬(?)이기도 하다. 특히 이 스킬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취준의 시기.
취준의 꽃 '자소서(자기소개서)' 안에서 우리는 다재다능하면서도 한껏 매력적인 존재로 피어난다. 자소서 안에는 일차원적인 단점이 없다. 단점이 있으면 그 이면의 장점이 곧 따라붙기 마련. 단점이 마냥 단점이 아니게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 (예시) 나는 성격이 급하지만, 그 때문에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이 좋다.
누군가는 그럴듯한 포장이라 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마법도 납득이 될 만큼의 설득력을 갖춰야 가능한 법이다. 즉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자소서를 쓰는 건 자신의 장단점과 지나온 나날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스스로를 입체적 존재로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해석함으로써 더욱 많은 삶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
‘지음적 사고’를 통해 자소서를 쓰듯 나의 삶을 다듬어 가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꽤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나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정성 들여 풀어쓴 나만의 자소서를 품고 살아간다면, 더욱 많은 인생의 답을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순>의 양귀자 작가도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간다고 말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_양귀자 <모순>, 작가의 말 중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자신의 모자람을 끌어안아 우뚝 선 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ADHD라는 질환에 대해 알고 싶다면.
- 솔직하면서도 위트 가득한 에세이가 읽고 싶다면.
2. 처방문
- 사람은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 누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외면하기보다는 나의 일부이자 고유함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스스로를 사랑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점 이면에 숨겨진 가치도 찾아보자. 신중함이 지나치면 결단력이 떨어져도 그만큼의 안정감이 생긴다. 성격이 급하다면 세심함은 떨어져도 실천력은 좋은 법이다. 자소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나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면 숨겨져 있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계속 사사로이 절망스럽겠지만,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기에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다._19
나는 ADHD에 항복하고, 질환의 파편으로 존재하는 모든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ADHD와 나는 원심분리기에 돌려도 분리되지 않으니 차라리 공존을 택한 것이다._48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_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