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집의 전세 계약을 연장하게 되어 2년 더 이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전세가가 2년 전보다 많이 내려서 집주인 분이랑 대화해서 전세가를 이천 만원 내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전세가율이 높아서 심지어 역전세인 곳도 많은 편이다. 이상적인 전세가율의 집은 이 동네에 없기 때문에 인프라가 좋은 여기에 살려면 평소 전세금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고 살아야 한다. 어서 돈도 더 벌고 청약도 되어서 내 집 빚을 차근히 갚아나가는 삶을 아니 꿈꿀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낯선 냄새에 민감한 영역동물인 율무를 데리고 당장에 다른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본다.
은행 전세대출 연장을 위해 어제까지 집주인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등기소에서 발급받아 냈어야 했는데 너무 나가기가 귀찮았다.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무인발급기로 가려하니 등기부등본은 역에 있는 무인발급기는 발급이 안되고, 등기소, 구청 무인발급기에서만 된다고 한다.(물론 데스크에서도 발급 가능하다.) 에잇. 어차피 나가기 귀찮았다며 교권 추락 뉴스 따위를 보며 내 일의 미래를 자조하다가 잠이 들었다.
우울증 약 때문인지, 요즘 흉흉한 뉴스를 많이 봐서 그런지, 진흙탕 같은 악몽을 꾸며 늦은 아침을 모색하던 나를 구원한 건 율무의 헤드번팅. 보들보들한 율무의 머리털 감촉에, 내 발 따위에 은혜로운 그루밍을 해주는 율무 덕에 악몽에서 깼다. “내 아침을 깨우러 온 나의 구원묘.“ 영화 <아가씨> 대사에 율무를 대입시켜 혼자 큭큭거리다보니 잠에서 개운하게 깼다. 은행에서 서류 내라고 연락 오기 전에 어서 서류를 내야 하니 나갈 준비를 했다. 얼마 전 부비프 와인 모임에서 퀴즈를 맞혀 선물로 받은 ‘산울림’ 굿즈 티셔츠를 검은 슬랙스 바지 위에 깔 맞춰 입고 나왔다.(서이초 사건 이후로 검은 옷을 평소에 입고 다닌다.) 이런.. 무인발급기가 아침 9시부터 된다고 한다. 실은 기계 안에 사람이 출근해서 발급해 주는 건가. 무인이면 밤새, 아니 적어도 새벽부터는 되어도 되는 거 아니야? 같은 AI 대학원생이나 할 법한 생각(실제로 그러함)을 하며 스벅에서 커피를 쪽쪽 빨며 무인발급기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는 중.
(+) 로봇 복지 같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