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난 암기왕이었다. 또래에 비해 높은, 142라는 아이큐(IQ)로 학교 1등을 먹었던 암기왕 안화용의 전성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그게 몇 장이든,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한 번 보거나 듣기만 하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내용을 외울 수 있었다. 겨우 한 단어를 외우지 못해 단어장을 보고 덮기를 여러 번 반복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암기왕이라는 게 진짜 내 얘기였나 싶기도 하다. 그 초능력이 늦게 발현되었더라면 나는 지금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만. 안타깝게도 암기왕의 재주는 엉뚱한 곳에 쓰이다가 그 운명을 다했다.
처음 그 능력을 쓴 건 교회 성경암송대회에서였다. 지금은 자의로 안 다니지만 나는 사실 모태신앙 크리스천이었다. 교회를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무교였던 울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을 한 후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세상에 태어나 눈을 떠보니 가족들과 함께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니고 가끔 새벽기도를 가는 삶을 살던 중에, 내 숨겨놓은 재능을 아깝게 들키고 만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종이를 다 씹어먹는 정도의, 코끼리 같은 암기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통의 가족이라면 영재 코스를 밟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는 것을 택했겠지만 나는 울 가족의 의외의 선택으로 성경 암송대회에 매해 출전했다. 대회를 코앞에 둔 주일에는 대예배당 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연을 해야 했다.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았던 게, 수학 계산을 할 줄 아는 침팬지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외운 잠언, 시편 같은 성경 구절은 감쪽같이 다 잊어버렸다. 쉽게 외운 건 쉽게 잊어버리는 걸까.
암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교회 신도 몇백 명이 앉아있는 대예배실에서 남장을 하고 주인공이 되어 연극을 한 적도 있다. 예수의 주민등록등본상 아버지이자, 성모 마리아의 남편 ‘요셉’ 역할이 주인공이었다. 대사량이 어린이 연극 치고는 극 중 인물 중에 가장 방대해서 우리 교회 안의 소년들 중에서는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아이가 없었고 그 역이 결국 내게 온 것이었다. 기다란 수염을 얼굴에 붙여서 대사를 할 때마다 재채기가 날 것 같았다. 왜인지 내 얼굴에 검은 분장(역사 고증?)을 하기도 해서 무대에 올라가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울다가도, 무대에 올라가선 내 대사를 야무지게 남자 목소리로 우렁차게 하고 내려왔다. 그 뒤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다. 내가 원하는 배역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닫기도 했고,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건 즐겁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내 재능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탐을 냈다. 각종 대회란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했다. 동요 부르기, 시 암송하기, 우리 고장 자랑하기, 동화 구연대회 같은 대회를 해마다 종류별로 나갔다. 학교 대표가 되려면 형식적으로 학교 자체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했다. 어쩌면 그때 나갔던 대회들 덕분에 웬만한 발표나 면접에서 떨지 않고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보통의 초등학생들과는 분명 다른 삶이었다. 그래도 대회에 나가달라는 어른들의 부탁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몇 주간의 혹독한 연습에 임한 뒤 대회에 성실히 다녀왔다. 어쩌면 내가 따온 메달이 생계를 꾸리는 것에 지칠 대로 지친 엄마를 웃게 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자식 자랑으로 뽐을 내고, 며느리를 하대하는 시댁 사람들에게 엄마가 큰 소리를 칠 유효기간을, 그 메달로 얼마간은 늘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 초능력은 울 엄마가 가장 연약하고 바스러질 것 같았을 때 내게 잠시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마 나 다음엔 아마 더 연약해진 누군가의 옆으로 옮겨갔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