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사람들은 가끔 그런 질문을 하곤 한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노력을 할 거냐고. 이 질문은 내게 유효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때처럼 최선을 다할 자신이 이제는 없다. 진을 다 뺐기 때문이다. 가루가 되는 심정으로 내 모든 걸 갈아넣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현재의 나에 마음껏 만족하진 않지만 과거의 나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만큼은 있다. 과거의 나야, 정말 수고 많았다.
오히려 요즘엔 특이한 종류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최선이랄까. 최선을 다하고 여러번 겪었던, 번아웃인지도 모르고 견뎌냈던 과거의 순간들 때문에 이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편이 나에게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은 명랑 드라마 같지가 않아서,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난 여러번 최선을 다했고, 내 뜻대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을 때마다 죽은 듯 지냈다. 말그대로 죽은 듯.
하지만 난 이제 죽은 듯 지내고 싶지 않다. 살 듯 살고 싶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루뭉수리한 오늘의 글쓰기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날들에 대한 묘사를 하기 위한 글쓰기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더라도 오늘만큼은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멋진 글 한 편보다는 오늘의 내 기분과 마음이 더 중요한 거라고.
최선이라는 말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십 대의 내가, 이십 대의 내가 겨우 지금의 내가 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거라. 최선의 내가 지금인지 자신할 수 없어서 최선이란 말은 내 진을 뺀다. 무기력한 나를 무력하게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삼십 대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잘 모르겠다. 꿈, 희망, 사랑이라는 거. 섣불리 가져도 되는 류의 일일까. 오늘도 역시 먹태에 1000cc의 맥주를 주문했고, 구남친에게 찌질한 연락은 하지 않았고, 책 한 권을 읽었고, 글 한 편을 썼고, 무사히 직장에서의 일을 마쳤는데. 혼술을 한껏 드링킹하다보니 드는 생각은 내가 감히 꿈, 희망, 사랑이라는 거 떠올려도 될까, 이런 무기력한 물음표들이다. 이 물음표에 대답해 줄 이는 없고. 배는 부르고. 잠은 오니. 이 고민은 내일 글쓰기모임에서 마저 해야겠다.
일기 쓰듯 오늘의 글을 이렇게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