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칭찬에 박하다. 별다른 사교육 없이 혼자서 공부를 잘 해낸 큰 딸인 나를 분명하고도 굉장하게 자랑스러워함에도 엄마는 내게 직접 칭찬을 하는 것은 되도록 피한다. 집에서 너무 칭찬만 받고 자라면 다른 곳에 가서 잰 체를 하고 다닐까 걱정을 하신 이유에서다. 나에 대한 우리 엄마 칭찬을 듣는 건 늘 남을 통해서였다. 선생님, 외가 친척들, 엄마의 동료들 같은. 엄마보다는 나에게서 더 먼 사람들 말이다. 받고 싶은 칭찬을 시간차로 감질나게 들어와서인지 나는 겸손하게 자라라는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인정욕구가 더 큰 사람으로 자랐다. 정작 자신 역시, 제자가 겸손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칭찬에 박한 선생님인 주제에 그럼에도 나는 내게 칭찬을 잘해주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 물론 입에 바른 말이 아닌, 찐으로 내 노력에 감탄하여 진심의 박수를 보내는 이들 말이다. 이를 테면 부비프 사장님이자 얼마 전 첫 책 작가가 되신 뮤쿄님의 경이로운 눈빛 무릇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
어제는 대학원 석사 과정 논문을 지도해 주실 교수님이 발표되었다. 내가 배정받고 싶었던 교수님은 배정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서 내 지망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기대를 어느 정도 내려놓고 있었다. 교수님 입장에서 과연 내가 뽑고 싶은 학생일까? 이미 자문해 봤기 때문이다. 교수님 수업의 중간과제 발표 날 공황이 심해져서 택시를 타고 혜화로 향했는데, 하필 그날이 택시기사님의 영업 개시날이자 초행길이라 이태원으로 가셔서.. 내가 발표자인데 20분 늦게 강의실에 도착한 이력도 있기에. 겨우 발표 순서를 바꾸어서 무사히 끝냈지만도. 정신이 건강하지 못해 꾸준히 성실하지 못할 수 있을 내가 교수님의 배정에 뽑히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 결과 파일을 열었다. 오. 내가 교수님의 지도학생 명단에 들어있었다. 교사를 계속해도 되나, 교사를 그만둘 거면 교육대학원은 더더욱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던 중 교사를 계속하기에 마음을 잡는 데에 이 수업이 도움이 되었더랬다. 교사로서 흔들리는 날에도 교육의 장면이라면 꽤 진지하게 임하는 나의 마음을 교수님도 알아주신 것 같아 굉장히 기뻤다. 아무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지척의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고 다녔다. 다들 내 마음처럼 물개박수를 쳐주셨다.
그 와중에 학교 선배 선생님이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다. 대학원 지도 논문 교수님이 발표되면 지도받을 학생들이 모여서 교수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것이 우선 예의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분위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교수님께 곧장 연락을 드렸다. 이메일 제목은 '교수님! 만나주십시오!'로 썼다. 메일 제목을 고르는 게 마치 새로 쓰는 책의 제목을 정하는 기분도 들어서 살며시 웃음도 났다. 교수님께 수업 관련 문의 메일이 아닌 이렇게 약간의 주접을 가미한 즐거운 메일을 드리는 것은 처음이어서 괜히 신이 났다. 논문 쓰는 것을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논문을 쓰는 동안 공부한 것을 배우고 나누면서 평생 지기지우를 얻어갈 것 같은, 훈훈한 예감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은 선배 선생님은 내게 논문부터 다 쓰고 생각하라고 얼른 내가 정신을 차리게 해 주셨다. 맞다. 나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알아달라고. 나는 한 것도 없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거라고 지금부터 박수를 쳐달라고 유난을 떤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늘 운이 좋아 시작도 전에 박수를 받은 것에 대해 결과를 끝까지 냈다. 대학 입시도 한 번에, 그 어렵다는 임용고사도 한 번에, 지역 이동을 위한 두 번째 임용고사도 한 번에, 대학원도 한 번에. 사주에 따르면 이게 다 공부를 도와주는 학당귀인이라는 조상님 덕분이라는데, 그럼 수능 때는 왜 좀 더 도와주실 수 없었는지 의문은 들지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어릴 때부터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던 내가 이제는 논문을 쓸 차례가 되었다. 대학원 수업을 들어보면서 느낀 건, 논문은 남들에게 알아달라고 쓰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성실하게 매일매일 일보일보(一步一步), 나아가며 발자국을 남기고 그 흔적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 그게 논문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그 한 걸음을 지금부터 걸어야 하는데, 어디로 걸어 나가야 할지 실은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칭찬받으려고 나아가기엔 이젠 머리도 엄청 굵고 또 크고 하얘지고.. 암튼 곧 사십이니 이제 지도 위에 핀을 스스로 꽂을 때다.(교수님이라는 멋진 나침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