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을 땐 내가 굉장한 무언가를 쓸 예정이라고 느끼는데, 막상 글을 쓰려하면 그리 굉장한 글감이 없다. 빈 화면 앞의 글 쓰는 내가 무력하게 초라해질 때는 그저 일기라도 일단 쓰는 게 좋더라. 아주 작은 것도 지나고 보면 꽤 소중해지는 기록이 된다. 이 글을 꽤 시간이 흘러서 읽으면, 소홀히 지나쳤던 하루들을 루페로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 기분이 들 테다. 며칠 뒤면 곧 12월이니, 핸드폰 캘린더에 적힌 일정과 분명치 못할 기억을 바탕으로 지난주의 일일(日日)을 돌이켜보기로 한다.
월요일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왔다. 늘 그렇듯 의사 선생님의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지난 2주는 어떻게 지냈어요?"
"다른 건 다 괜찮고요."
"그럼요?"
"중학교 이후로 이렇게 본격적으로 짝사랑해 보는 게 처음이라 너무 힘들어요. 짝사랑 그만두려고요."
"어쨌든 사랑이니까 계속해보는 것도 좋지 않아요?"
사랑 맞다.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가끔 특별한 날에 연락은 해도 되냐고. 서른다섯 살에 처음 해본 구차한 짝사랑이지만. 의사 선생님의 처방도 연애상담도 아닌 다정한 답변이 내 마음을 콕 찔렀다. 더 적극적으로 짝사랑을 해보는 쪽으로. 나를 스윽 밀었다. 그 정도 민다고 밀릴 내가 아닌데, 실은 밀기도 전에 내 마음이 먼저 그쪽으로 가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참는 건 내 재주 밖의 일인데. 선생님의 사무적인 응원에 내 마음은 이미 짝사랑의 결승선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었다. 수신지를 잃고 잔뜩 부풀려진 내 마음은 결국 빵- 터져 버렸다. 그 밤 그와의 통화에서, 계속 연락은 해도 되지만, 너무 자주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그렇게 짝사랑은 혼자서 쫑파티를 했다. 눈물도 먹고 콧물도 먹으면서. 구질구질하게.
화요일엔 부은 눈으로 학생들과 수업도 하고, 가끔 몰래 울다가, 줌으로 들어도 되는 대학원 수업도 대면으로 다녀왔다. 대학원 가는 길목에 있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에서 그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물론 마주치지는 못해서 슬펐다. 아유 구차해라.
수요일엔 뭐 했더라.
목요일엔 서강대 쪽 책방인 북티크(Booktique)에서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 북토크가 있었다. 최대한 작가 같이 입으려고 블루 셔츠에 검은 원피스를 겹쳐 입고, 옷에 묻은 고양이 털을 돌돌이로 떼어낸 후 학교로 출근했다. 비록 어제(수)까지만 해도 짝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북토크 당일엔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학교 일과 틈틈이 북토크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그래. 나 이렇게 한번 하면 제대로 멋지게 해내는 사람인데. 날 놓친 당신 후회할 거야.' 이런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면서 쉬는 시간마다 한 슬라이드씩 채워나갔던 것 같다. 다 만들고 보니 꽤 그럴듯했다. 그날은 하필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학생들이 물감이 잔뜩 묻은 붓을 들고 내게 자꾸 질문을 한다고 다가왔다. "선생님 작가 같은 옷 한 벌밖에 없으니 오늘은 제발 선생님 자리로 붓 들고 오지 말아 줘."라는 말을 연신 해야 했다. 겨우 학교 일과를 마친 후, 퇴근길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북토크 장소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했다. 책방 안에 북토크를 보러 이미 도착하신 분들이 꽤 계셨다. 평일 저녁에 유명 작가도 아닌 내 북토크에 시간 내어 와 주시다니. 감격스러웠다. 그중엔 대구에서 서울까지 짧은 여행을 오셨다가 북토크를 여정의 일정에 끼워주신 분도 계셨다. 당일 오전이라도 정신을 차려 북토크 준비를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내 솔직한 글에 용기를 얻고 본인들의 묵혀둔 솔직함을 용기 내어 꺼내주셔서 참 감사했다. 행사가 끝나고는 북토크에 와주신 글방 친구들과 책방 앞 수제맥주집에서 다음 날도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부러 모른 체하고는 맥주를 마셨다. 크.
금요일.. 아마 집에서 고양이 유튜브를 보다가 잔 거 같다.
토요일엔 재입고할 책을 택배로 부치고, 독립출판 제작자 모임 "여기 여기 모여라"에 갔다가, 부비프 "으깬 딸기" 와인 모임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각자 만들거나 구해온 특별한 음식을 곁들여 샴페인을 종류별로 엄청 마셨다. 샴페인은 축하할 때 많이 마시는 술이니, 술을 마시기 전에 각자의 축하할 일을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축하를 할 때마다 샴페인 한 병을 따고, 또 축하를 하고 또 한 병을 따고. 그렇게 사람 수만큼 병을 따다 보니 내 손에 술이 쥐어져 있는데도 다음 술을 기대하게 되는 아주 고약한 욕심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너무 즐거워서 웃음이 났다. 2024년에는 겨우 욕심 낸 마음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지, 하고 이른 신년 다짐을 해보며 또 마셨다. 귀가해선 율무에게 술주정을 부릴 뻔했는데, 한 대 맞고 정신 차려서 잠자리에 곧 들었다.
일요일엔 내가 좋아하는 가수 다린 님 전시회와 토크콘서트에 갔다. 내 체력으로 소화하기 힘든 일주일이긴 했나 보다. 결국 몸살이 났다. 하도 뭘 많이 하고 다닌 탓에 무엇 때문에 아픈지 짐작이 안 갔다. 다린 님의 전곡을 셔플로 재생해 두고는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잤다. 전기장판을 땀이 펄펄 날 정도로 뜨겁게 틀어놓고서였다. 이불속이 뜨거워서인가. 꿈에는 무언가 계속 열심히 하는 내가 등장했다. 어린 동생과 어린 내가 하늘을 날면서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자는 중간중간마다 율무가 하도 울어서 이따금씩 깨어서 츄르를 주거나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잠에 들었는데, 아마 꿈 속이었을 거다. 집에 들어가려고 하니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온 것 같았다. 신나게 신발을 벗고는, 소파에 앉아 축구 중계를 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뛰어갔다. 그가 나를 반갑게 맞으며 안아주려는 찰나, 꿈에서 깼다. 희미해진 기억에, 하얗고 말간 얼굴이 도통 기억이 안 난다는 생각만 하루종일 했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