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간의 병가가 끝이 났다. 병원에서는 세 달 이상의 안정가료를 권했지만, 두 달이나 세 달이나 여전히 짧은 시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어서 병가로 최대 쉴 수 있는 60일을 보내고 학교에 복귀했다. 병가를 시작한 9월부터 나는 돌아가야 하는 11월을 내내 생각했다. 얼마나 생각했으면 학교에 돌아간 첫날에 대한 꿈을 두어 번 꾸었다. 학교에 복귀한 내게 "학교 다시 오니 어때요?" 하고 심경을 묻는 동료교사에게 "뭐, 똑같죠."라고,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꿈이었다. 다시 돌아온 첫날, 현실에서도 역시 그 질문을 받았고 나는 미소를 꾸며내어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나지 않아서 꿈처럼 똑같이 말했다. 두 달간 꿈에서도 복귀를 연습했는데, 겨우 그 질문 하나 활기차게 대답하지 못하나 싶은 스스로의 모습에 곧 허탈해져 버렸지만.
깊은 우울증의 그 질긴 인력을 이기고, 일터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나. 단연코 사랑에서 왔다. 나를 기어코 낳은 마음,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마음, 나를 다른 이에게 부풀려 자랑하는 마음, 가장 효과적인 말로 나를 달래는 마음, 내 넘어진 무릎을 털어주는 마음, 나의 울분을 다스리는 마음, 일 년을 넘게 참아두었던 내 눈물을 닦아주는 마음. 부끄러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나이 든 나를 계속 지켜보고 싶어 하는 마음, 내가 나를 결국은 지키게 하는 마음, 쓰러지지 않게 붙잡고 버티는 마음. 계속 주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마음. 그 마음들이 아직도 살아있을까. 마음들의 잔존을 확인하고 싶어서 지난 주말에는 일 년 반 만에 마산 집에 다녀왔더랬다. 일평생 받기만 한 사람이 일 년 반 동안 못 받은 사랑을 한꺼번에 받으러 간 거다. 염치도 없다.
우리 가족은 네 명 그리고 두 마리다. 나, 엄마, 동생 지용이, 지용이 남편 창옥이, 마산 개 라떼, 경기도 고양이 율무. 그날은 사람만 모였다. 저녁 아홉 시가 훌쩍 지난 시각이라 열려 있는 맛집도 얼마 없었지만 그래도 동생 부부가 며칠간 고심해서 고른 대패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동생 부부가 한쪽에, 엄마랑 내가 다른 쪽에 마주 보고 앉았다. 가족들의 대화가 그러하듯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진 않다. 마주 앉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충분히 잘 먹고 있는지, 안색으로 비춰본 건강은 어떠한지, 어디서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게 전부다. 이렇게 일 년마다 한 번씩 오면 앞으로 스무 번은 더 보겠냐며 말하는 엄마의 하소연 역시 사랑에서 온 말, 아무나 만날 바에 혼자 사는 게 낫다며 자기들이랑 같이 실버타운 가자고 말하는 동생 부부의 잔소리 역시 사랑에서 온 말. 내게 하는 말이 사랑인지 비아냥인지 가리며 들을 필요 없는 가족의 투명한 말은 입에 한가득 넣은 고기쌈과 함께 몰래 눈물을 삼키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서 비롯된 말들을 다지고 또 다져본다. 말들을 꾹꾹 뭉친 다음에 주먹밥 먹듯 씹는다. 알알이 든 사랑이 곧 돌아가는 마음이 되었던 거구나, 이제서야 실감한다. 나 정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