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연락을 받은 건 아마 9월이었을 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숙사 305호를 같이 썼던 S가 다가오는 10월에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내게 10월은 유독 바쁜 달이었다. 주말마다 대구, 서울, 구미 등지에서 열리는 북페어에 셀러로 참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S가 식을 올린다는 셋째 주만 일정이 비어있었다. 다행이었다. 당연히 결혼식에 갈 거라고 답했다. 교사인 친구들이 많아서 대부분은 이십 대 중후반에 결혼을 많이 했고, 서른 중반이 되고선 결혼식에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찾으려 옷장을 뒤졌는데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었다. 입을 옷이 없는 건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기에 당황하지 않고, 옷장 구석에 숨어있던 민트색 재킷을 꺼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람들의 결혼식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어른이 되기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결혼식에서는 마음이 요동친다. 식장 여기저기에 놓인 웨딩앨범 사진을 보면서는 왠지 뭉클해지고 만다. 나와 다른 차원으로 내 사람들이 떠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그런 상태로 신부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 특히나 그 신부가 내 오랜 친구인 경우에, 익숙한 얼굴이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이면 눈물이 왈칵 나고야 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고등학생 때의 내가 상상해 본 친구의 미래를 실제로 마주했음에서 오는 벅차오름 따위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한 가정을 이루어 더욱 어른스럽게 살아가게 될 친구의 미래를 염려하고 감히 살피는 오지랖 따위에서 비롯된 눈물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알아차렸다. 나는 수많은 하객 중 한 명이라는 걸. 다음 차례의 하객을 위해 얼른 신부대기실에서 빠져나왔다.
식장 안 지정 테이블에는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이 진행되었다. 어느새 축가 순서였다. 얼굴의 온 근육을 총동원해서 축가를 부르는 사람을 보며 한때 동네 뮤지션으로서 결혼식 축가를 부르러 다녔던 예전의 일도 생각이 났다. 그날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J의 결혼식이었는데, 동네 기타리스트의 기타 반주에 맞춰 인디뮤지션 제이레빗의 ‘Love Song’을 신나게 부르고 나서였을 거다. 내가 친구를 축하한답시고 엄청난 말실수를 해버렸더랬다.
나: “J의 첫 번째 결혼식을 축하합니다!!!”
하객들: ‘???(어리둥절)’
어르신 하객들: ‘!!!(화남)’
동네 기타리스트: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이겠지요.(하하핫)”
나: ‘헉(입틀막)(얼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 “하하하하” “깔깔깔깔” “껄껄껄껄”
나: ‘휴(땡)...’
앳된 티가 났던 얼굴로 실수를 했기에 망정이지, 지금의 얼굴로 그 실수를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축가가 끝이 났다. 완창한 분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축가는 삑사리 안 내고 무사히 부르기만 해도 된 거라며. 때에 맞춰 박수를 치다 보니 결혼식이 끝났다.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환했다.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볼 사진은 아니지만, 친구 S에게는 가끔 꺼내어서 볼 단체사진이었다. 내 미소가 뚜렷하게 보이라고 광대뼈를 한껏 치켜들어 웃으며 사진에 찍혔다. 이 날 특이했던 건, 신랑 친구도 부케를 받고, 신부 친구도 부케를 받았던 거다. 분수쇼처럼 양쪽으로 부케가 동시에 날아가는데, ‘역시 내 친구 창의적이야.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하고 영특했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광경이 왠지 자랑스러워 껄껄껄 영감처럼 박수를 치며 웃고 말았다. 사진에 내 얼굴이 무지 이상하게 나왔을 거 같다. 허허허. 먼 미래에 사회책에 시대상 자료로 내 얼굴이 실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
원래 결혼식장에 대해 미리 찾아보고 가는 편은 아닌데, S가 결혼하는 곳은 특별한 곳일 거 같아서 결혼식 전날,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더랬다. 여기는 식에 쓰인 꽃을 플로리스트가 포장해 줘서 가져갈 수 있게 해 준 댔다. 우리 집엔 꽃에 취약한 고양이가 있어서 집에 꽃을 가져갈 순 없고, 내가 원래 꽃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냥 집에 가려다가, 꽃 선물을 하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그곳에 갈 때까지 꽃이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일부러 꽃망울이 있는 꽃송이들을 골랐다. 하얀 꽃이 종류별로 그득해서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꽃꽂이를 하는 재주는 없어서 땔감 모으듯이 꽃다발을 만들었다. 평소에 예쁜 것들을 모으는 시간이 없었어서 그런가. 꽃 선물을 주려고 꽃을 모으는 건데, 되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게 미리 선물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유리창으로 비치는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햇살에 꽃들이 그새 피어난 것이 신기했다. 활짝 핀 꽃 너머에 내가 좋아하는 곳, 부비프책방이 보였다. 꽃다발을 들고 들어가니 책방 사장님들이 아주 커다란 화병을 찾으시더니 참 곱게도 꽃꽂이를 하셨다. 친구 S에게 화병에 예쁘게 담긴 꽃들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다시금 오랜만의 연락을 했다. 왠지 또 울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