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마우스북페어 셀러 후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서울에 있었다. 마산에서 서울의 문화를 덕질을 하려면 왕복 10시간의 버스를 타고 1박 2일의 일정으로 오가야 했다. 물론 KTX를 타도 됐겠지만 10년 전의 내가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아니었기에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콘서트, 음악 페스티벌 등을 비롯한 각종 덕질 행사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당일치기로 덕질을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했다. 그때는 더더욱이나 가족들이랑 같이 살 때라 가족들에게 다 큰 딸의 외박조차도 설득해야 해서 덕질을 하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었다. 찰나 같은 덕질의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가고 나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경부선 터미널로 냅다 달려야 했다. 헐떡이며 겨우 버스에 오르고 나면 원하지도 않는 잠에 들어야 오랜 탑승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데, 고속도로 위의 셀 수 없는 터널을 지날 때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나를 깨우기 일쑤였다. 터널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실감했다. 3D 덕질 세계에서 2D 현실로 차원을 넘어오는 기분이랄까. 나는 왜 지방에 살까, 우리 엄마아빠는 왜 서울에 신혼집을 구하지 않았지, 왜 좋은 건 다 서울에 있는 걸까, 같은 막막한 억울함들을 떠올리다 다음 덕질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더랬다.
그런데 몇 달 전 다른 작가님에게서 굉장한 소식을 들었다. 부산에서 북페어가 열린다는 거다. 물론 소소한 규모의 북마켓은 그동안 분명 열렸을 테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북페어는 처음이었다. 무려 준비위 분들의 자비로 북페어 운영비를 충당한다는데, 나의 오랜 울분과 같은 질감의 마음에서 이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확신하고야 말았다. 울컥했다. 이 엄청난 북페어의 이름은 "부산 마우스북페어(@mousebookfair)". 영화 <라따뚜이>의 '요리사 쥐' 캐릭터에서 이것저것 재주 좋게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따와서 북페어 마스코트를 정했다고 하는데, 쥐 캐릭터를 물끄러미 보다가 또 울컥해 버렸다. 다른 멋진 동물이나 캐릭터도 많을 텐데, 굳이 쥐라니. 지방에도 볕 들 날이 올 거라는 의미가 담긴 걸까. 생긴 것도 화려하지 않고 실험에나 쓰이는 쥐가 꼭, 혼자서 이리저리 책을 만들어보는 독립출판자를 비유하기에 제격인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마우스북페어를 소개하는 포스터에 그려진 쥐 캐릭터를 보자마자 서사가 생겼달까. 쥐를 좋아한 적 없는 내가 쥐를 귀엽다고 생각해 버리게 되었다. 원래는 고양이를 그리는 작가님이 독립출판페어를 위해 쥐를 그려주셨다는 일화도 재밌고.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북페어 신청서를 열심히 썼다. 마산 시골쥐 출신인 내가 부산을 무대로 활약할 타이밍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지금, 서울역에 갔다가 다시 부산역으로 가야 할 여정이 고행일 수도 있겠지만 참여해서 나도 이 북페어의 한 장면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운이 좋게도 125팀의 셀러 중 한 팀에 독립출판듀오 안팎(AhnXPark, @in_and_out_notburger)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부산마우스북페어"에 다녀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근무를 하고, 밤에는 대학원에 다니는 빡빡한 한 주를 보내고 난 직후였다. 금요일 밤늦게까지 대학원 과제를 하다가 겨우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토요일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다니.. 눈꺼풀에 접착제를 칠해 놓은 것처럼 눈이 잘 안 떠졌다. 눈을 감은 채로 수서역으로 가기 전에 챙겨가야 할 것들을 다시 헤아려봤다. 북페어 물품 중 무거운 것은 택배로 미리 행사장 측에 부쳐두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외의 잡동사니들이 문제였다. 있으면 안 쓰고 없으면 쓰는 일이 생기는 것들 말이다. 갈 땐 무거워도 챙기는 게 낫지, 중얼중얼거리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나름의 규칙으로 작은 캐리어에 욱여넣었다. 팀원 정원이와 맞춘 티셔츠를 입을 때만큼은 눈에 성냥을 꽂은 것처럼 번쩍 떠야 했다. 오늘, 내일만큼은 깔끔해 보여야 했다. 내 책의 이미지는 내가 결정할 수도 있지, 또 중얼중얼거리면서 돌돌이로 섬세하게 먼지를 떼어내고는 나름 손으로 다려 입었다. 이 시간에 일어나 휴일에 웬일인지 깨끗하게 씻고 무려 집을 정리하는 나를 본 반려묘 율무는 어리둥절해진 표정이었다. 내가 멀리 다녀올 것을 예상했는지 야옹야옹 시끄럽게도 잔소리를 해댔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