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마우스북페어 셀러 후기
비몽사몽간에 수서역에 도착해 부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가 출발하니 그제야 북페어에 셀러로 가는 게 실감이 났다. 10월 말 구미독서문화축제 뒤로는 실상 한 달을 쉬고 참여하는 거라 다른 도시들을 지나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설레기 시작했다. 독립출판듀오 안팎(AhnXPark)(@in_and_out_notburger)의 멤버 정원이(@garden_in_jardin)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깜박깜박 졸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부산역이었다. 부산 사투리를 찐하게 쓰는 택시 기사님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다 보니 봉인되어 있던 내 마산 사투리도 흥이 잔뜩 올라 경남 바이브가 살아났다. 마산 사투리로 상상마당 부산에 오실 북페어 관객 분들의 마음을 휘어잡고야 말겠다며 결심하는 동안 잠시 맑은 눈의 광인이 되었다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정원이의 눈빛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택시에서 내려 상상마당 부산 건물을 응시했다. 숙소도 상상마당 스테이로 잡아서 1박 2일 동안 이곳에서 머무르게 될 것이었다. 씩씩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다른 작가님들도 보였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내심 반가웠다. 우리 부스는 5층에 있었다. 9시가 되자마자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서 부스 꾸미기에 돌입했다. 한 부스를 신청하려다, 출판한 책이 두 권뿐이라 0.5 부스를 신청했기에 평소에 쓰던 테이블보를 반으로 접어서 쓰고 부스를 지키는 것도 의자가 하나뿐이라 둘이 상주할 수 없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해야 했다. 다음에는 정원이도 한 권, 나도 한 권 책을 더 만들어와서 온전히 한 부스를 신청해야겠다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부스를 다 꾸몄다. 올해만 해도 대구 퍼블리셔스테이블, 서울 퍼블리셔스테이블, 구미독서문화축제를 거쳐 부산마우스북페어가 벌써 네 번째 북페어였다. 그 덕에 부스를 꾸미는 요령이 꽤나 생겼기에 빠르게 부스를 꾸미는 게 가능했다. 준비는 다 되었다.
부산마우스북페어가 시작되었다. 독립출판 북페어가 어쩌면 독립출판을 부러 찾지 않는 분들께는 생소한 개념이었을 거다. 서면에 온 김에, 상상마당에 온 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 따라 어쩌다 오신 분들의 행사장을 조심스레 살피는 눈빛이 느껴졌다. 책을 파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초장에 들었고, 이번 북페어는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는 독립출판 자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드리고, 꼭 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작가님들의 책과 준비진 분들이 준비해 주신 행사장을 찬찬히 둘러보고 가실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부산 시민들께 더 반갑게 다가갈 수 있었다. 경상도인 특유의 관심을 표하는 화법에 대해서 정원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뭐예요???"라는 말이 서울 사람에게는 꽤나 무서운 느낌으로 들린다는 것에 나는 빵 터지고 말았는데, 사실 경상도 사람에게 "이 뭐예요???"라는 것은 엄청나게 관심 어린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해석하자면, "이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멋찐 당신, 이 골져스한 작품에 대해서 어서 내게 알려줘요. 나 당장 사고 싶어서 어지럽거든요."라는 말이기에. 그래서 나는 정원이에게 이 질문을 오늘내일 듣거들랑 정말 적극적으로 책, 굿즈 설명을 해주라고 말했다. 웃음코드가 맞는 우리끼리 키득키득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북페어 운영진 분들은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셨다. 필요한 건 없는지, 혹시나 조명이 부족하진 않을까 위태하게 흔들거리는 사다리에 홀로 올라가 조명을 달아주시기도 하고, 한 남자 스태프 분은 쥐 모양 머리띠가 더듬이 형태로 이마에 내려올 때까지 여기저기를 오가시고. 북페어에 셀러로 있다 보면 해이해지고 마는 시간대에 운영진 분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정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하루를 보내고 정원이와 근처 밥집에서 장어덮밥을 먹고는 일과를 마무리했다.
둘째 날 아침엔 눈이 빨리 떠졌다. 마산에 사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북페어에 날 보러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북페어는 대부분 수도권 또는 마산에서 먼 곳에서 열리니까, 내 책행사에 장사를 하는 가족을 부르는 건 정말이지 미안한 일이어서 와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사실 내가 오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센스 넘치는 제부 창옥이가 차를 운전해서 우리 가족을 데리고 행사장에 와줬다. 북페어 행사시간이 되자마자 가족을 만나니, 힘이 솟았다. 엄마, 지용이, 창옥이와 부비프책방(@buvif.bookshop) 사장님인 요한 님(@haemak_photo)네 부스에도 인사하러 들렀다. 내가 힘들 때마다 부비프책방 부부 사장님들이 같이 맥주도 마셔주시고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본인들의 일처럼 즐거워해주신 것을 가족들도 알고 있어서 너무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한 님이 제작하신 달력과 노트를 팔만 오천 원 치를 샀는데, 바로 옆에 계시던 주얼(@eastend_jueol) 작가님 책은 안 사냐고 내가 한 마디 했더니, 엄마가 "어머머, 소설가님이 추천하시는 책 한 권 살게요."라고 바로 말했다.(역시 마산의 큰 손, 마산의 골목대장 울 엄마.. 짱멋.) 작가님께선 "받는 분 성함에는 뭐라고 써드릴까요?"라고 물으셨는데, 엄마가 평소에는 안 쓰는 서울말로 한 대답이 진짜 웃겼다. "그냥... 리바이스 바~디웨~어로 해주쎄요."라고 했기 때문에. 그냥...이라고 해놓고는 외국인만큼 긴 이름이라니. 매장 사람들과 돌려 읽으려고 이름보다는 매장 이름을 더 기억할 동료들 입장에서 그렇게 쓴 걸 나도 알지만, 그냥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긴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담긴 뜻(속옷)에 놀라 당황하는 작가님들 표정이 너무 웃겼다.(아 울 엄마 재치로 북페어 찢었다..) 정원이의 배려 덕분에 가족들과 인근 맛집인 “기장손칼국수”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고, 부산마우스북페어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서 눈물 나게 기뻤다.
혹자는 이 행사에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아주 작은 행사라도 기획해 보고 직접 운영해 보고 사람들에게 와달라고 호소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 규모의 북페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하고 내년에도 또 하겠다고 자처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 것인지를. 쥐처럼 미미한 독립출판계의 사람들이 작은 먼지를 굴리고 굴려서 이 정도의 커다란 북페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면, 이제는 그 행사의 성패의 원인을 시작한 이들에게서만 따져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이어서 굴려야 한다. 함께 다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산마우스북페어 2회를 개최하는 것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 방법은 많다. 내년도 행사를 위해 봉사자로 참여하는 직접적인 방법도 있을 테고, 가장 쉬운 방법은 아직 물량이 남아있다고 하는 펀딩(창작자 소개 및 첫 책 이야기를 모은 책+마우스 문구 키드+후원하기)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책에는 우리 독립출판듀오 안팎(AhnXPark)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아직 독립출판에 있어서 가방끈이 짧은 나는 여기까지만 생각이 난다. 혜안이 있다면 마우스북페어 운영진들에게 알려주시라. 어쨌든 저쨌든 마산 시골쥐는 부산에서 부산경남을 아우를 수 있는 북페어가 열린 것에 감격하고 말았기에.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계속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경상도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기도 하고. 이것저것 아이디어가 샘솟는데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 북페어 마무리를 할 때 창작자를 위한 공연을 ‘당근과 채찍’(@dangun_chaejjik) 팀에서 해주셨더랬다. 그중에 이내(@inesbriz) 님의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라는 노래 가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일 년 또 ‘일단은’, ‘어쨌든’ 열심히 살다 보면 ‘조만간에’ 부산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날이 벌써 기다려져서일까 괜히 마음이 부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