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작가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다. 중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이미지 사진을 찍어본 경험도 없던 나다.(그 시절엔 사자머리를 하고 눈동자가 수채화처럼 번지듯 나오는 사진을 찍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다.) 그럼 왜 갑자기 전문 사진작가님이 찍어주시는 프로필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가 하면. 북토크, 북페어 등 독립출판물 홍보 관련해서 쓸 사진이 필요해서였다. 막상 행사가 코앞에 닥쳐서 사진을 찾으면 쓸만한 게 없었다. ‘여행 와서 잘 놀고 있어요. (V^^V)’ 느낌의 손 브이 유형 사진, ‘책을 이만큼이나 샀지요. (+_+)’ 같은 구매 후기 유형의 사진, 하두리 웹캠 스냅숏을 찍듯이 눈을 잔망스럽게 부릅뜬 셀피 유형의 사진 들만 가득했다. 그 중에 고르고 골라 그동안은 책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두번째 유형의 사진을 썼다.
내가 글쓰기 관련 상을 받거나 어느 신문에 보도자료가 실리는 것도 아닌데 프로필 사진을 찍는 건 너무 과한 소비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네이버에 “작가 프로필 사진”을 검색해 봤다. 전문 사진가의 솜씨가 느껴지는 사진도 있었고, 누가 봐도 핸드폰으로 지인의 손을 빌린 것 또는 본인이 직접 찍은 것도 있었다. 햇살이 잘 드는 창문에서 팔짱을 끼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찍는다면 굳이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우리 집 벽도 제법 스튜디오의 배경지 같지 않은가. 내가 뭐라고 사진을 남기나 싶어서 금세 시무룩해졌다. 독립출판물 에세이 한 권 낸 것이 다인데. 그래. 내가 뭐라고.
그때, 오래된 소원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너 한때 모델이 되는 것이 꿈이었잖아. 소원이었는데 뭐 어때. 찍어봐.”
맞다. 중학교 때 내 꿈은 모델이었다.(참고로 내 꿈은 백 번도 넘게 바뀌었다. 대통령, 과학자, 의사, 장교 등등.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이상하게 키가 쑥쑥 크고 희한하게 말랐던 시기였다. 빼빼 마른 딸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동네 사람들 때문에 엄마는 괜히 억울했을 거다. 고기를 구워 먹이고 시래기 된장국에 밥까지 말아 먹여도 살이 안 쪘던 나였으니까. 사람들은 어느 날엔 내 몸무게를 걱정하더니, 어느 날엔 내게 모델을 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티브이에선 <아이엠어모델>이라는 모델 서바이벌이 방영 중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 나는 전신거울 앞에서 모델들의 포즈를 따라 해보고 MC장윤주 님의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거울 속 내 눈에 심기도 했다. 169cm를 넘긴 키는 그 이상 자라지 못했고, 내 얼굴 크기만 자라서 자연스레 모델의 꿈은 접게 되었지만.
그래. 내가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건 어쩌면 20년 전의 내가 연마한 것을 한 번쯤은 카메라 앞에서 펼치고 싶어서였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수중에 스튜디오에서 사진 한 번은 찍어볼 돈을 마련해두지 않았던가. 그렇게 굳이 필요가 없지만도 그저 하고 싶어서, 어제 다녀왔다. 대망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내가 알지 못하는 내 표정을 제대로 보고, 웃지 않아도 빛날 수 있음을 포착해서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사진 촬영 직전, 작가님께서는 내게 한 가지를 유념하라고 하셨다. 코로 습-, 입으로 후- 숨을 내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숨을 참으면 사진이 어색하게 나온다고 했다. 아, 그리고 유튜브 쇼츠에서 본 박민영 배우님의 화보 촬영 팁도 있었지. 혀를 입천장에 대고 입을 살며시 열어둔 상태로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
- 숨을 쉬면서 입을 살짝 열어두기.
- 어색하다고 억지로 웃지 않기.
- 웃으려면 꽃이 피듯 활짝 웃기.
- 얼굴에 주름 생기는 거 걱정하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그렇게 멋들어지게 프로필 사진을 찍고 와브렀다. 오래된 소원을 풀며 사는 게 요로코롬 재미지다.
*참고로 제가 사진 찍은 곳은 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