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님의 <읽을, 거리>라는 책을 어제 다 읽었다. 김민정 시인님의 책은 예상치 못한 순간 눈물을 끓어오르게 해서, 읽던 페이지에서 순간 눈을 떼지 않으면 눈물이 넘치게 되고 만다. 그 사실을 깜박 잊고 있다가 어제는 지하철에서 울 뻔했다. 보통은 감명 깊은 구절이 있으면 아이폰 메모장에 메모해 뒀다가 책스타그램에 올리는데, 시인님의 글은 어느 한두 문장만 끌어오는 게 되려 나중에 이 책을 읽을 이의 감상을 방해할 것 같아 하나도 옮겨 적지 않게 됐다. 그 문장은 그 책 속에서만 그 의미로 읽힐 터였다.
이 책에는 시, 에세이도 있지만 인터뷰도 실려 있다. 그중 김화영 번역가님과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책이 다른 이에게도 읽혔으면 해서 친구에게 이 책을 빌려준 터라 지금 정확한 워딩을 발췌해서 쓸 수는 없어서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쓰려면 자신의 이야기를 써라. 남의 이야기를 내 것만큼 잘 쓸 수 없다.
- 한 번 쓰면 다시 쓴다고 더 잘 쓰기란 힘들다. ‘그 이야기’에 대해 정말 잘 쓸 수 있을 때 잘 익혀서 써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쓸 거리가 없는 날이다. 물론 미주알고주알 쓰려면 설익은 일기 같은 글을 쓸 수야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날이다. 인터넷에서 내 책에 대해 질책하는 리뷰를 봐서이기도 할 거다. 변명거리를 늘어놓자면 할 말은 많다. 내 인생에 등장한 사람들이 곧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들을 등장시켜야만 그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글을 쓰고 나를 위한 책을 내는 게 나쁜 일일까. 그럼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일은? 시를, 소설을 쓰는 건? 어디서부턴 되고 안 되고, 누구에게는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이 필요 없다는 건가. 내 기준에선 글로 써도 괜찮았던 일들이기에 썼던 것인데. 물론. 누군가에겐 아니꼬울 수 있고, 마침 그게 내 창작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거다. 상품으로 만든 건 나니까. 허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빼고 나면 글로 쓸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이 남나 싶어서, 그렇게 다 빼고 나면 글을 왜 써야 하나, 겨우 이걸로 책을 만들어도 되나 싶기도 해서.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오늘은 쓸 거리가 도통 없다.
당분간은 다른 이의 잘 익은 글을 오래 들여다보며 생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