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보통 5년마다 학교를 옮긴다. 한 학교에 머무른 지 벌써 5년이 지났기에 근처 다른 학교로 전입을 왔다. 같은 학교 안에서 교실 이사만 해도 힘든 일인데, 다른 학교로 짐을 옮기는 것은 분명 대이동이다. 대구에서 올 때 교실에 있던 물품들을 최대한 나눠주고 또 버리고 왔는데도 5년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짐이 모였다는 사실에 놀라고야 말았다. 특대형 이사박스 다섯 개를 가득 채우고, 캠핑용 핸디 트럭에까지 한가득 실었다. 이사 전날 전입 학교에서 특별실 이사를 위해 이미 힘을 다 쓴 터였다. 학교 이사를 하기도 전부터 진을 빼어 내 짐은 카카오 퀵 기사님께 맡겼다. 특별히 귀여운 다마스를 모는 분께 짐 운반 의뢰를 드렸다. 다마스를 타고 전국 이동 책방을 하시던 “북다마스” 사장님의 피드를 인스타에서 보면서부터 다마스는 특히나 내게 깜찍함의 아이콘이 된 차다.
“이 차 참 귀여워요. 그렇지 않나요, 기사님?”
“아이구 귀엽다니. 이거 아주 위험한 차예요.”
“네모나서 바람에 잘 넘어가나요?”
“그렇기도 하고 양철로만 되어있어서요. 사고 나면요. 어휴.”
“잘 찌그러지나 봐요. 더 잘되셔서 좋은 차 끌고 운행하셔야 할 텐데요.”
“이 일도 조금만 더하고 그만둬야죠. 힘들어요.”
“그쵸. 힘드시겠다. (쩝)”
“선생님들도 요즘 힘들죠? 뉴스 보니까 힘들겠던데요.”
“그쵸. 그쵸. 영 쉽지는 않죠. (쩝)”
이삿짐 이동 때 조수석에 같이 타겠다고 사전 연락하지 않고선, 뻔뻔하게 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조곤조곤 수다를 떨었다.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은근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퀵 예상 추가비용은 달라졌다. 다마스가 짊어지기에는 버거웠을 이사박스의 무게에 작은 턱마다 덜덜거리던 차의 움직임처럼. 퀵 비용은 근심으로 가득한 기사님의 목소리에 상한가를 향해 달리다가도, 예전 같지 않은 교육계의 분위기로 아연하고 실색한 동승자의 한숨에 하한가를 허락하기도 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게 기를 겨루던 그때, 나는 기운을 내뿜기를 그만두었다. 이삿짐보다는 작은 양이어도 어쨌든 이사는 이사 아닌가. 오른쪽의 귀가 들을 새라 내 왼쪽 귀와 기사님 귀에만 들릴 정도의 개미 같은 목소리로 추가 금액을 불렀다. 의기하고 소침해 있던 다마스는 두둠칫두둠칫 브레이크댄스를 추며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래의 내가 번복할 새라 얼른 기사님께 추가 퀵비를 계좌로 보내드렸다. 새 학교 도착 후 기사님은 출발 때보다 더 재빨라진 솜씨로 새 교실까지 짐을 옮겨주셨다. 과거의 품삯으로 오늘의 노동을 갚은 건가. 돈을 낸 덕에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배가 고파지는 건 왜인지. 나 대신 땀을 흘린 기사님은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유유히 사라지셨다.
이제 이삿짐을 풀어야 할 때다. 다마스가 다 담아와 준 덕분에 수월했던 이사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전세 계약이 끝나 집을 옮겼을 때도 이삿짐을 푸는 데에 몇 주가 걸렸는데, 이번 이삿짐은 열흘 안에 다 풀어야 한다. 곧 3월이면 집주인들이 올 테니까. 함께 집들이를 해야 하니까. 올해의 주인들은 열세 살 6학년 어린이들이다. 우리 한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내가 그저 무탈하기만을, 무사하기만을 바라기엔, 열세 살의 바람은 분명 더 새콤하고 달콤한 것일 텐데. 그러니 남은 열흘 동안 짐을 풀면서 3월의 집들이를 향기롭게 준비해보아야 할 거다. 나만 사는 곳이 아니니까, 함께 살 곳이니까. 우선은 쓸고 닦아야지. 그리고는 그들의 처음이 낡거나 녹슬지 않도록 반딱반딱 광도 내며 꾸며두어야겠다. 3월의 봄을 환영해 왔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