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 번째 월요일이면 두발 검사로 교실 안은 분주했다. 귀 밑 5cm라니. 머리카락이 길면 딴생각이 많아져 성적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자행되던 일이었는데, 삼손이 머리카락을 보전한 채로 이 광경을 봤다면 학생 인권을 위해 함께 싸워줬을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처럼 삼손은 오지 않았고 두발 검사가 시작됐다. 주임 선생님의 발걸음이 멈추고 우리 반 어느 한 명의 귓볼에 차가운 자가 닿으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싹둑.” 숫자 5를 넘어가는 불량한 머리카락들은 철제 가위에 잘려 교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고. 선생님이 가고 나면 우리는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한 데 잘 쓸어 모으고는 잠시 지켜보았다. 아무도 울지는 않았다. 그러곤 제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했다. 다음엔 귀 밑 3cm로 잘라야지, 생각하며. 스무 살이 되면 이런 굴욕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될 거라 믿었으니까.
귀 밑 5cm에서 얼마 길지 않은 촌스러운 머리카락으로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졸업식을 앞둔 때라 스무 살이면서 고등학생이었던 어정쩡한 성년의 내가 처음 한 일은 학자금 대출이었다. 웬만한 건 스스로 해야 했던 게 우리 집의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갓 스무 살이 된 말년 고등학생이 혼자 은행에 가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서러운 일이었다. 수행평가 과제를 두고 와서 이미 출근 중이던 아빠에게 전화해 무작정 가져다 달라고 칭얼거리던 중학생 때와는 달랐다. 그땐 아빠가 아직 아빠였을 때니까. 하지만 술과 더 친해져 회사, 방 바깥, 그 어디도 나가지 못하는 아빠를 은행에 부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투정을 부려볼까 했던 마음을 다잡고 은행원 분의 설명을 메모하며 남의 돈을 빌리는 데에 성공했다. 굴욕적인 성공이었다. 은행원 분의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학생 혼자 왔어요?” 그래도 머리카락이 좀 길어서인가 괜찮은 척 은행을 나왔다. 갓 어른이 된 표정을 하고 눈물을 말리고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무사히 끝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서인가. 내게 스무 살이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초라함을 마주해야 하는 시기의 시작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동기들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부모님과 사이도 좋고 학자금 걱정도 없이 지낼 것만 같은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마피아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게임을 하듯 내 실체를 숨겼다. 매일매일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가 모두 달랐다. ‘보통의 스무 살’을 연기하느라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싶어 슬펐다. 나의 이상함을 설명하느라 내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타인에게 쥐어주고 싶진 않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할 바엔 책 속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도서관 책을 잔뜩 끼고 하숙집에 들어가선 내 삶의 퍼즐들을 자존심과 함께 지켰다.
다행히 지금의 내겐 친구들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삶의 방향키를 스스로 쥐게 되면서 내 밖을 볼 여유가 생겼다. 불안이 가시자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가만 관찰하다 보니 내가 이상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이상한 구석이 꽤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통의 나이’를 연기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진심으로 친구를 사귀고 싶어졌다. 들쑥날쑥하는 매일매일이 내 친구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했을 때 ‘너도 나 만큼이나 이상하구나. 그럼에도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어. 친구가 되고 싶어. 내 앞에선 가끔 이상해져도 이해해줄게.’ 같은 생각이 들고. 생각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시간을 공유하고, 철없는 순간의 지금을 허락하고, 서로의 굴욕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하면서, “어쩐지 그래서 네가 그때 이상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게 2021년 5월 30일 서른세 살의 내가 내린 친구의 정의이다. 십 년 뒤에는 또 달라지려나.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친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