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씩,
내가 될 수 있었을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랬듯 엄마 역시 우리를 떠나 새 출발을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가끔 엄마가 사라져 울음이 터지는 한 살 터울 동생 앞에서 괜찮은 척 연기하는 일곱 살 때의 기억이 내 것이 아니었더라면, 막 차장을 달고 새 차를 뽑았던 아빠가 그대로 쭉 성실히 가업을 이어나갔다면, 아빠에게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술에 의존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게 엄마를 화나게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독서실비 삼천 원을 아빠의 지갑에서 훔치지 않아도 됐다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술냄새를 풍기며 울던 아빠를 경비실 앞에 모인 친구들 앞에서 달래어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더라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덜어졌다면. 나는 좀 더 천천히 어른이 되었을까. 죄책감 없이 실패해도 되는 무엇이 되었을까.
운명. 그것 참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어느 명리학자의 말이었나. 좋은 명도 대운이 따라야 발한다고. 내 사주는 좋은 명을 타고났지만 초년운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모태에서부터 교회에 가올린 소박한 기도들이 하늘에 닿을 새도 없이 공중에서 휘발해 버렸던 건. 그저 오늘은 집안싸움에 그릇이나 창문이 깨지는 일은 없기를, 엄마가 내일 아침에는 우리 옆에 있기를, 숨죽여 울다가 베갯잇이 젖고 콧물에 막혀 숨을 허덕이게 되는 일은 없기를, 술 취해 제정신이 아닌 아빠의 취기가 가실 때까지 그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일이 없기를, 부끄러운 우리 집의 민낯을 119든 112든 신고해서 들추는 일이 없기를. 그저 이 모든 일들이 내 대운이 따르지 않아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미움과 슬픔이 조금은 날아갔다.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일 테니까.
난 뭐가 되고 싶었을까.
사실 난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괜찮아지고 싶었다. 홀로 우리를 키우는 엄마에게 어서 든든한 가장이 되어주고 싶었다. 공부를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냐고, 없는 형편에 학비 쓰지 말고 그냥 일을 시키라는 아빠 쪽 사람들 말에 엄마는 가슴을 치며 울곤 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대구 공단의 여공이 되어 돈을 벌고, 자길 키워주지도 않은 외할머니에게 생활비를 댔던 엄마였다. 이부 남동생 셋을 키우느라 엄마는 일을 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공장에서 깜빡 잠이 든 사이 엄마가 잃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 딱 그 길이 만치의 보상금도 엄마는 엄마 자신을 위해 쓰지 못했다. 엄마의 외삼촌, 그러니까 내 외할머니의 오빠가 노름을 하는 데에 썼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그 못되고 가시 박힌 말들을 들었다. 얼마나 분했을까. 서러웠을까.
난 단번에 확실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직업을 어서 가져야 했다.
그러니까, 교사가 되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었다.
우리 자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우리에게 자주 말을 건네곤 했단다. 내겐 자랑이 되어라, 내 동생에겐 사랑이 되어라고. 태아 때부터 말을 잘 듣는 아이였는지 그 말을 따라 난 우리 가족의 자랑이 되었다. 이미 무엇이 되어버린 그제서야 나는 떠올려본다. 내가 될 수 있었을 어떤 가능성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바로 단념하게 되는 건, 가끔은 연애도 하던 그 젊고 곱던 엄마가, 새 출발을 유예하고 우리 곁에서 늙기를 택한 엄마가, 눈을 감아도 보여서다. 그러니 난 그저 수행을 하듯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뿐이다. 엄마가 더 이상은 설웁지 않도록. 동생이 날 계속 자랑할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을 안심시키는 방식으로.
어느 날은 우리 반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원래 아이들이란 괜찮은 척 어른들을 안심시키는 데 능한 존재라는 걸 알기에, 그 충실함 속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살핀다. 본래의 나이에 머물지 못하고 어른의 속도로 서두르는 아이가 보일 때면, 천천히 오라고, 거기 네 나이에서 여유 있게 머물다 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른의 일을 한다. 마치 그 시절의 내게 안부를 묻듯.
그러다 아주, 아주 가끔은, 나와 닮은 어른을 생각한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한때는 나의 가족이었던 그 사람의 삶이 이제는 평온하기를 빈다. 그를 닮은 나의 나이 듦이 더 이상 두렵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 생각들로 주문을 외우며 때를 기다린다. 내 사주는 마흔부터랬는데. 나이를 먹는 데에는 돈이 드니까 출근을 하고, 번 돈으로 안전한 카페 귀퉁이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내가 될 수 있었을 다른 무엇에 대한 회한을 삼킨다.
그리고 여의주를 품듯 이 글 따위를 쓰며 가만히 기다린다.
내 명을 조금이나마 반짝거리게 해 줄 대운을. 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