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과 동해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2박 같은 1박 2일을 다녀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둘이서만 키득거릴 수 있는 이야기로 집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늦은 낮이었다. 이제 출발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가는 안락한 시간이 끝나버릴 것만 같아 입을 꼭 다물고는 집 안을 뒹굴뒹굴 굴러 다녔다. 해가 중천을 지나고 나른한 낮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서로의 얼굴을 붙잡고 말했다.
“이제라도 출발해야겠지?”
“응, 지금이라도 출발해야 노을 지는 바다를 볼 수 있을 거야.“
“오빤 쉬지도 못하고 나 북페어 도와주고, 거기에 연차 내고 강원도 운전까지. 어쩌지. 괜히 미안하다.”
“난 괜찮아. 같이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아. 숙소 예약한 거 취소도 안될 테니까. 즐겁게 가보자고.”
“나도 이제 와서 숙소 취소되려나, 생각했었는데. 크크크. 그래. 찍고라도 오자!”
여행을 시작하는 아침엔 분주할 것 같아 미리 사두었던 편의점 커피를 얼음컵에 넣어서는 점심시간을 지나 한참 지각해서 등교하는 학생이 된 기분으로 차에 올라탔다. 북페어를 마치고 여행길에 올라서는 데에는 얼마간의 체력 회복이 필요했다. <나는 솔로>를 보며 섬유질이 가득한 과일도 와구와구 먹고 고양이랑 놀다가 이런저런 흑역사도 얘기하다 보니 하루와 또 다른 하루의 반이 금세 가버렸던 거다. 다행히 해가 점점 길어지는 때라 동해에 가는 동안 해는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거기 차 밑에 보면 입 속이 상큼해지는 사탕 있을 거야. 그거 먹을래?”
“나는 그거보단 졸음이 확 깨는, 그 까만 껌이 좋은데. 난 막 네 알씩 씹어서 먹어.”
“오, 그거 여기 있어. 가만 보자. 어디 있었는데.(뒤적뒤적) 어, 찾았다. 날짜 한번 봐봐. 산 지 오래된 거긴 한데.”
“오빠, 이거 유통기한 1년도 넘게 지났다.”
“껌은 1년 지나도 먹어도 되지 않나? 적힌 거랑 소비기한은 또 다르니까 먹어도 될지 몰라.”
”므어라고오옷~~~?“
“(능청스레) 어유, 가는 길에 휴게소나 들러 볼까.“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아니었고, 거기에 평일 오후이니 강원도 동해로 가는 사람들이 없을 시간이긴 했지만서도, 휴게소엔 간소하게 열려있는 편의점과 이용객을 기다리고 있는 화장실 말고는 영업 중인 곳이 거의 없었다. 구경할 것이 없어 아쉽기도 했지만 깨 볶는 우리의 오두방정을 구경할 사람들도 없었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하늘은 파랗고 앞으로 다가올 바다 풍경은 더 푸르를 것이라 이를 기대한다고 유독 싱그러웠던 우리의 미소를 사진 속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 여기 화장실 앞 벤치에 핸드폰 놓고 사진 찍자.”
“여기에서?”
“응, 있어봐. 내가 저기 타이머 맞추고 올게.”
“(어리둥절) 어떻게 한다고? 응응?”
“(헐레벌떡) 자, 10초다. 10초. 지금이닷.”
[찰칵! 찰칵! 찰카카칵카카칵! 칵!]
“연사로 찍은 거야?“
“응. 다 찍었다. 가자.“
“끝이야? 또 안 찍어?“
“원래 찍는 데에 의의가 있는 거야. 외부 연수 다녀온 거 증빙 자료 사진 찍듯이 한방에! 알지? 남기는 데에 의미가 있는겨.”
“경상도 사람이 충청도 사투리는 왜 써. 우리는 ~겨, ~유 요런 말 안 쓰는데.”
“원래 좋아하면 따라 하고 싶은겨. 어서 가유.”
동해 묵호 등대 근처에 구해둔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바다가 가까워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바다가 참 예쁜데 배가 너무 고팠다. 해산물을 못 먹는(본인의 말에 따르면 먹을 수는 있으나 즐기지는 않는) 사람과 강원도 동해까지 와서 개불, 해삼, 멍게, 자연산 막썰어 모둠회를 못 먹는다는 게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나로서는 굉장한 아쉬움이었지만.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미리 알아두고 그가 신나게 한 술 뜰 때 그 장단에 맞추어 나도 가뿐한 마음으로 한 술 더 크게 입에 넣고 싶은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린 오늘 저녁으로 한우짬뽕국밥이라는 별미를 먹기로 했다. 한우육회가 고명으로 올라간 짬뽕에 공깃밥 한 공기까지 나오는 것이 기본 세트인 음식점이었다.
한우짬뽕국밥 두 그릇을 시키고는 먼저 나온 밑반찬 중에 김치부터 맛을 봤다. 김치를 담글 때 새우젓으로 간을 보신 건지, 갈치속젓을 넣으신 건지 김치 맛이 개운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본식은 무조건 맛있는 법이지, 꿍얼꿍얼거리면서 주린 배를 옛날 그 시절 흥부처럼 채우고 있을 때였다. 난처해하는 국밥집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어머, 매다. 매! 우리 집 지붕 안에 제비 새끼들을 어쩌면 좋아. 매야 매. 매가 지붕 안에 들어가려고 하네. 어머어머. 어쩌면 좋아.”
도둑을 잡아달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소리를 듣고는 사장님의 피앙새인지, 또는 사장님을 남몰래 짝사랑하시는 분일지도 모를 어느 듬직한 아저씨가 나타나셨다. 아저씨는 황진이가 황새 춤을 추듯이 매를 쫓아내러 성큼성큼 뛰어나오셔서는 매를 저 멀리 날아가게끔 하셨다. 그러고선 국밥집 사장님을 향해 배우 이계인 아저씨만큼이나 호기로운 표정으로 목구멍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 보이셨다.
“저렇게 겁을 줘도 매가 금방 다시 오지 않을까? 화용이는 매와 제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라면 일단 <TV! 동물농장>에 연락했을 것 같은데.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PD님이 반기실 소식일 거 같어.“
“근데 그렇게 제비를 보호하는 게 생태계 유지에 맞는 일인가?”
“제비가 집 지을 곳이 없는 것도 문제 아니야? 자기들이 살던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근데, 제비가 귀한 동물 맞나? 하긴. 귀한 동물, 안 귀한 동물 또 따로 있나?”
“어렵네.”
그 대화를 하면서도 내 입 속에 든 건 한우육회였으니까. 괜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매를 멋지게 물리친 아저씨가 국밥집 사장님께 칭찬을 받고 계셨고, 국밥이 맛있었기에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게 되어버렸다. 매가 날아다니던 하늘엔 어느새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었다. 국밥집에 있는 한국인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믹스커피머신에서 내린 종이컵 커피를 하나씩 나란히 쥐고는 높은 계단이 서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노을빛에 물든 표정으로 슬며시 미소를 짓던 오빠가 먼저 말을 건넸다.
“노을 엄청 예쁘다. 다행이야. 참 오길 잘했다.“
“안 왔으면 괜히 숙제 안 한 것처럼 찝찝했을 거야. 진짜 오길 잘했어.”
“바닷가 따라서 산책할까?”
“웅. 산책하면서 맥주도 좀 사고.”
“크, 좋지.”
“크, 좋아유.“
다음 여행은 어디가 좋으려나. 물론 이번에 계획한 동굴 탐험, 해수욕장 걷기, 카페와 소품샵 투어 이런 건 다 못했지만도. 그래도 뭐 어떤가. 계획은 어디까지 계획일 뿐이니까. 즐거우면 여기든 저기든 어디든 그저 당신과 함께라면 좋지 아니한겨~. (글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