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당신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 대해 써도 좋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의 주인공 ‘알렉스’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에서 글쓰기 모임을 맡아 얼마간 하게 된다. 그 역시 쉼터에서 머무르는 피해 여성이다. 오랜 동거 중이던 남자친구 사이에서 생긴 어린 딸 ‘매디’를 홀로 돌보느라 가정집 여러 곳 청소(Maid)를 그때그때 맡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동안 쉼터로부터 받은 보살핌이 고마워 쉼터 청소를 하겠다는 의미로 도와줄 일이 없겠냐고 소장에게 물었는데, 4년 전 등록을 포기했던 대학교에 습작을 내어 재합격한 사실을 알고 있는 소장은 그에게 청소 대신 글쓰기 모임을 맡긴 것이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지나간 행복을 이야기한다. 아빠와 함께 팝시클 사탕을 녹여 먹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사탕을 빼내어 먹기가 쉽다고 왠지 울먹이며 말하는 사람, 출산 후 지쳐있는 상태로 육아를 하던 중 아이가 자기 손을 처음 잡았던 기억에 고운 표정을 짓는 사람, 걸스 나잇을 즐겼던 날 데이트 상대의 흡족하였던 몸매를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사람. 그렇게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양손 엄지에 중지, 검지를 마찰시켜 신기한 박수를 보내며 눈을 마주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때까지 서로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것이 이 모임의 방식이다.
이번 모임은 ‘알렉스’가 여는 마지막 회차다. 이 자리에 일어선 후로는 대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딸과 함께 900km도 넘게 떨어진 몬태나 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작별 인사로서의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때, 눈동자가 커다래진 이가 사려 깊게 물음을 건넨다.
[‘알렉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우리에게도 들려줘야죠.]
당연히 ‘알렉스’가 딸을 낳았던 순간을 말하지 않을까, 뻔한 장면이 뒤에 이어져서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이 아쉬워지는구나, 라고 혼자 단정 지으려는 순간 ‘알렉스’는 모임 공간 그 어느 곳이 아닌 저 멀리 마음으로 봐야만 보이는 미래에 자리한 희망을 보며 차분히 말한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인데요. 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조용한 희망. 그 끝장에는 몬태나주의 풍경과 그 속을 거니는 ‘알렉스’와 딸 ‘매디’의 모습이 나올 뿐이다. 디테일 묘사 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하지만 결국엔 이 마지막 조용한 장면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려주려면 앞의 그 소란을 생략하고 서사를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토리를 이해하다 보니 내가 겪은 난리도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최고의 순간이 최고라는 것을 알아보게 하려는 분별력을 길러 주려고 생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하고 싶진 않다. 열 편의 시리즈보다도 더 긴 시간의 내 비밀스러운 삶이 그리 단편적으로 읽힐 수는 없을 거니까. 하지만 조용한 희망이라는 말은 보고 또 보아도 설레게 되고 만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는 어떤 멋진 장면이 남았을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