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매거진 <KEYWORD>에 수록된 글입니다.
잡지에 실을 ‘가방’에 대한 글을 쓰려고 가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옷장을 열어봤다. 온 가방을 꺼내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씻고 보아도 글 한 편을 무리 없이 써 내려갈 사연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잊힌 가방 중에 이야기를 지닌 것이 있지 않을까. 헌데 이미 잊힌 것에 무엇이 있을지 무슨 수로 기억해 낸단 말인가.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빛났다. 잊힐 만큼 오래되었다는 건 곧 경제권이 없던 어린 시절에 엄마가 사준 가방일 거다. 대뜸 고향 마산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예전에 저 어릴 때 엄마가 사준 가방 중에 이야기로 쓸 만한 게 있을까요?”
“그 휠라(FILA) 책가방 있잖아. 내가 니 초4 때 큰맘 먹고 사줬는데 고3 졸업식 날까지 쭉 들고 안 다녔나.”
“아,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엄마가 자세히 좀 말해줘 봐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게 된 글은 다음과 같다.
때는 세기말. 그 시절 휠라(FILA) 책가방은 마산에서 좀 산다고 하는 아이들이라면 응당 메고 다니던 핫 아이템이었다. SNS도 없던 시절, 오랫동안 옷 장사를 해온 엄마는 십 대들의 길거리 패션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인기 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을 아이템을 잘 파악하는 편이었던 엄마는 지금으로 치면 10만 원대 정도였던 휠라 책가방을 눈여겨뒀다가 내게 사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우리 집은 당장 하루를 먹고 살 생활비도 막막한 형편이었다. 그러니 그 멋지게 빠진 남색 가방은 내게 분에 넘치는 게 분명했다. 엄마는 없는 형편에 큰 딸인 내게 이렇게나 귀하고 좋은 걸 주었으니 열심히 공부해야만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렇게 대단한 가방을 들고 다니려니 영 부담스러웠다. 어째 주인과 물건의 역할이 바뀐 것 같았다. 나는 그 황송스러운 책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 극진히 대하며 들고 다녔다.
애를 쓰며 일명 “가방 수호 작전”을 펼친 건 열한 살의 3월부터 스무 살의 2월까지였다.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으로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거라면 무어든 내게 장만해 주는 엄마가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걸 보는 게 싫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엄마였다. 그에 더해, 엄마의 높은 기대를 내가 따라가지 못할까 봐 두려움도 느꼈다.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주술처럼 그 가방에 서려 있음을 알고 있던 나는 괜히 내 섣부름 때문에 엄마의 소원을 그르치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엄마는 부디 이미 지나간 ‘당신’의 시간과 딸의 미래가 같지 않길, 좋은 일들로만 가득해지길 빌고 또 소원했을 테니. 책가방의 가죽 결은 고급스럽고 부드럽기만 한데 참 이상한 건 가방을 만지고 쓸어내릴 때마다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엄마의 모든 무리를 다 보상해 줄 만큼의 성공을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 와중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성공은 가방을 새것처럼 지키는 것. 그뿐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고역을 겪어야 했다. 가방의 어느 한 부분도 젖지 않도록, 나보다는 가방 쪽으로 최대한 우산을 바짝 붙여 다녔다. 고데기로 멋을 낸 앞머리가 젖은 물미역처럼 이마에 들러붙고 안경에 물이 잔뜩 맺힌다 한들, “가방 수호 작전”은 계속되어야 했다. 바람이 불어 비의 방향이 수시로 바뀔 때는 가방이 최대한 젖지 않게 우산을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여 움직였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가방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는 또 무리한 일을 해서 내게 분에 넘치는 가방을 새로 사줄 것이 분명했다. 상상만 해도 싫었다. 책가방을 커다랗게 느끼던 어린아이는 엄마의 부침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퍼석퍼석해진 낯빛을 마주하는 건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이십 대 후반에 떠난 뉴욕 여행에서 엄마의 가방을 사러 뉴욕시 근교의 명품 아웃렛에 갔더랬다. 계획에도 없이 갑자기 귀한 선물을 사려고 일정을 틀어 알음알음 찾게 된 투어 버스를 겨우 찾아 타고 갔다. 벌이를 시작하고 여윳돈도 모은 차에 상견례 같은 가족 행사를 치를 때나, 모임에 들를 때 엄마가 들 명품가방 하나쯤을 장만해주고 싶었나 보다. 막상 가보니 진짜 내가 사주고 싶은 가방은 헉 소리도 못 낼 정도로 값이 나갔다. 한 단계 낮은 가격대의 가방이 있는 쪽으로 점점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한 시간을 넘게 사주고 싶지만 사지 못하는 가방 주변을 빙빙 돌다가 포기하는 마음으로 결국은 중고가의 브랜드 가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사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최선의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 시절 울 엄마에게 사랑이라는 건 마음 같지 않은 본인의 능력을 책망하면서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를 주는 것, 가능만 하다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무리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엄마는 내가 책가방을 모시고 다녔던 것처럼 엄마의 자그마한 집 한 공간에 그 가방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실컷 자랑도 하며 들고 다니라고 선물한 가방인데 어느 박물관의 유물처럼 소중히 전시된 지 오래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의좋은 형제처럼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지켜나가고 있다. 비록 무리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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