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의뢰서
오늘은 수학 시간에 가능성에 대한 수업을 했다. 불가능하다, 아닐 것이다, 반반이다, 일 것이다, 확실하다. 가능성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달라진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다가 문득 든 생각. 내일 내가 죽을 가능성은 낮겠구나, 싶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 기절할 수도 있고, 창궐한 감염병에 걸려 합병증이 올 수도 있고, 너무도 기가 막힌 소식에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고, 행복하게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내가 살아있을 확률이 확실하다고, 또 불확실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있을 것이다, 라고 할 수밖에는.
예전에 인상 깊게 본 SBS 단막극이 있었다. 제목은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시한부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하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스스로 계획하는 내용의 드라마였는데 죽음을 주제로 한 드라마치고는 밝고 즐거운 에너지가 가득했던지라 기억에 남아있다. 이걸 보고선 나도 장례식을 미리 계획해놓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장례식 플랜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혹시나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대로 장례식을 잘 추진해줬으면 좋겠다. 슬퍼하진 말았으면 한다. 원래 그 사람이 살아있는 평생 했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유언이라고 하던데, 이 글 역시 그저 지나가는 말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일단 첫째로 내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패션 감각이 좋았으면 좋겠다. 검은색 옷 중에 멋진 옷이 없다면, 검은색이 아니어도 자신의 패션 센스를 뽐낼 수 있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온다면 더 좋겠다. 멋진 옷을 입고 방문한 내 장례식에서 평생의 배필을 마주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칙칙하게들 입고 오지 마시라. 내가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도 중간중간 손거울은 챙겨 보시고 눈물 자국은 지워주시게나. 거기 마스카라 다 번졌다. 친구야. 숭해.
사람들이 모였으니 분위기를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둘째로 내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줬으면 좋겠다.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만약 내 장례식에 내가 참석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울음소리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랫소리로 장을 메웠으면 한다. 아는 사람은 알 텐데 나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Melon에서 DJ로 활동 중이다. DJ 플레이리스트 중에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우정 여행’이 있는데 그걸로 틀어주면 딱이겠다. 노잣돈은 들고 가지 못해도 흥얼거릴 노잣곡은 하나 챙겨둬도 되지 않겠나. 인생은 여행이라더니, 황천길에 요 선곡이 딱이다.
셋째로,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릴레이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한테 고마웠던 것, 나와 잊지 못할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눈물바다가 되는 것보다는 웃음바다가 되길 바라기 때문에 내 흉을 잔뜩 봐주는 것도 어떨까 싶다.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나에게 가졌던 서운한 마음을 모두 장례식 때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에 대한 미움, 화, 서러움이 나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면야. 아주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을 꼭 껴안아 주기를 바란다. 방문해준 당신들이 모두 한 번씩은 내가 되어, 나의 부재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을 우리 가족을, 날 대신해 보듬어주기를 바란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내가 당신의 가족에게 그러했듯. 여러분 옆의 보이지 않을 내가 우리 가족을 꽉 안아주고 싶을 딱 그 정도의 세기만큼. 꼬옥.
2021년 12월 21일. 서른세 살의 북포토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