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완주하려면
우리 집 화분 이름은 ‘식물이’다. ‘식물이’에게 어서 물을 줘야 하는데. 물을 줄 시기가 지났는데 나는 물 주기를 미루고 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시들어있는데, 물만 주면 싱그럽게 살아날 ‘식물이’를 질투하기 때문일까. 물을 주고 싶지 않다. 결국은 오늘 안에 줘야겠지만. 잎이 쪼그라들어있는 모양이 영 안쓰럽기까지 하니.
나에게 우리 집 ‘식물이’는 영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유리병 안 장미꽃 같은 존재다. 장미꽃잎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야수처럼, ‘식물이’가 힘을 잃고 시드는 것 같을 때마다 황무지 같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 나 또 메말라 있었구나. 물을 줘야겠구나. 너한테도, 나한테도.
일터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쪽팔리면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슬픈 일이었다. 99개의 일을 잘하더라도 1개를 망치면 형편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울었다. ‘식물이’라도 얼굴 맡에 두고 울었으면, 쟤가 좀 덜 말라있었을 텐데.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는 그 타격감의 유효기간이 짧은 것일지도.
그럼에도 그런 상상을 했다. 지금까지의 나를 이룬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무로 돌아가는 상상.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처럼. 마음에 박힌 칼을 뽑아내고 아스라이 사라지면 어떤 기분일까. 내 칼을 뽑아줄 수 있는 김고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긴 한가. 자력으로 살아왔으니 어쩌면 그 칼도 결국엔 내가 뽑아내야 하는 Self-Service인 것일지도.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하다가.
이게 다 뭔 소용이야, 난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울 가족들에게 잘 살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안부도 꼬박꼬박 알려야 하는데. 그깟 마음에 꽂힌 칼 하나 대수인가 싶어서. 뉴욕풍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대왕 크로플을 뜯어먹으며 2샷을 뺀 1L짜리 아아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 무가 되려면 빚부터 청산하는 게 우선이지. ‘식물이’가 죽지 않게 이 아이에게 물을 주는 마음으로, HP를 충전하며 끝을 유예하다 보면 내 삶도 완주되어 있겠지. 그래야만 개운한 슬픔으로 이 삶과도 안녕, 하고 작별할 수 있을 테니. 그러니 물을 주어야지. 자연스러운 엔딩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