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믿지는 않지만 좋아는 합니다만

믿어도 꽤 괜찮을 사주팔자인지라

by bookphoto

나는 사주를 크게 믿지 않는 편이다. 지역 이동을 위해 이미 합격한 임용고사를 또 치렀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 2017년이었고 2017년의 내 운세는 다음과 같다고 했다. 본래 물이 많은 사주에 홍수까지 덮친 격으로 뭘 해도 안 되는 해라는 것이다. 아마 몸도 아파서 큰 수술을 했을 것이라고 사주 보시는 분이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 거기까지는 너무나 신통하게 맞아 들어가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백방 이번 시험에 낙방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필기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터라 합격하기엔 시험 점수가 간당간당했어서 내심 찔렸지만, 나는 합격하겠다는 일념 하에 반박했다.(대구 사투리로 읽어야 한다.)

"전 제가 붙을 것 같은데요? 붙으면 어쩔 건데요??"

"아가씨가 붙으면 다시 여길 찾아오소. 무조건 떨어진다카이!"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 불안에 떨었는지. 그런데 말이다. 사주 선생님의 해석이 틀렸던 건지, 내가 내 운명을 이길 만큼 독했던 건지 어쨌든 난 합격했다. 합격하자마자 사주 샵에 갔는데 사주 선생님은 파트 타임제라 그 시간에 가게에 안 계신다고 했다. 이런. 아무튼 그 뒤로 사주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이거 이거, MBTI보다 덜 정확한데. 맞다. 난 유사과학도 아닌 그 무엇들에 꽤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믿지는 않는데 좋아한다. 어찌 됐든 무엇 같은 내 성격과 무엇 같은 내 인생을 풀이해주는, 꽤 다정한 학문이기에. 이게 뭔 소리람.


그렇게 잠시 제쳐뒀던 사주팔자를 다시 들여다볼 계기가 생겼다. 사실 옆자리에서 꽤 오래 동거 동락하며 나의 지기가 되어준 선배 선생님과 전화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중이었는데, 사주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거다. 심심하던 중에 나의 사주도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학문을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섣불리 남의 사주를 보는 것은 보통 꺼려지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가까운 사이기에 특별히 내 사주를 봐주시기로 했다. 내 생년월일시를 읊었다. 사주팔자 책을 급히 뒤적이는 소리가 ASMR로 들렸다. 믿지는 않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선배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내 사주의 키워드는 이랬다. 임자일주, 강휘상영, 겁재, 장생, 학당귀인, 천을귀인, 양인살, 홍염살. 이게 무슨 사자성어도 아닌 고어인가 싶지만. 풀이를 들어보니 꽤 내 것 같았다. 우선 임자일주란, 내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고 보는 세계관 같은 것이다. 내가 잘 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인 아주 이기적인, '나'의 기운이 센 팔자. 고로 이 세계관은 노래도 만들고, 책도 쓰고, 책스타그래머도 하고, 공부를 더 하겠다고 대학원도 간 내게 아주 딱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강휘상영도 일맥상통한다. 강휘상영이란, 강에 밝은 빛이 비친다는 뜻인데, 이 말에는 빛날 화에 녹일 용, 빛으로 세상을 녹이겠다는 내 이름과도 맞아 들어가는 진묘함이 있다.


겁재는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뜻인데 내 팔자는 나의 경우엔 엄마께 드리게 될 것이라 했다. 전생에 은덕을 받아서 현생에 그것을 갚는 것이라 한다. 이왕이면 부모님께 받는 사주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하자 선생님께선 새로운 지론을 주셨다. 다른 사주의 경우엔 친척, 시댁 어른, 쌩판 남에게 주는 일도 있다 하니 내 사주는 겁재 중에서는 아주 좋은 사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만 한 울 엄마 손에 잡힌 주름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다. 울 엄마에게 겁재인 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난 좋은 사주다.


장생. 말년에도 생기가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년운은 좋지 않으나 나이 사십부터 운이 발하여 늙어서도 잘 살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어렸을 때 그렇게 맘고생한 걸 생각하면, 말년에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나이 드는 게 심지어 설렐 때도 있다. 6년만 더, 아니 음력으로 따져야 하니까 7년만 더 지나면 진짜 대박인 거다. 떼돈은 아니더라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재력과 건강으로 장생할 수 있다는 게 복 중에 복이다.


그리고 사주에 따르면, 내겐 나를 돕는 조상님이 두 분 계시다고 한다. 공부를 돕는 학당귀인과 조상의 은덕을 누리게 해 준다는 천을귀인. 생각해보면 공부로 보는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 마음먹으면 붙는 게 시험이었으니. 물론 내가 열심히 한 덕이 크겠지만, 내가 사주를 믿는 정도인 1할 정도는 조상님께 기대어도 될 것 같다. 이제 대학원도 갔으니 논문도 척척 쓰는 척척석사가 되어야 할 텐데, 조상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조상의 은덕이란 무엇일까. 아직 덜 살아봐서 그런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인 양인살과 홍염살. 살이라는 말은 사실 좋게 느껴지진 않지만도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도 아닌 게, 나는 이 두 살의 뜻이 꽤 맘에 든다. 양인살은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뜻한다고 한다. 겨우 11년 차에 14분의 선생님을 이끄는 학년부장교사를, 그중에 두 번째로 어린 내가 하고 있으니 나는 양인살이 있는 게 틀림없는 것인가. 우리 반 아이들의 좋은 수업 태도도 어쩌면 나의 양인살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선생님께선 추측하셨다. 홍염살은 도화살과 비슷하면서 완전 다른 것인데. 많은 남자가 나에게 끌리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먹은 단 한 사람만은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엄청난 초능력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맞는 것 같다. 내가 맘에 드는 사람을 10분 안에. 저스트 텐미닛. 앗. 숭해라. 그만.


어쨌든 한번 더 짚고 넘어가자면 난 사주를 엄청 믿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 사는 게 너무 힘든 날에는 사주가 힘이 되고는 한다. 결국은 내 사주 풀이를 요약하면 해피엔딩이라는 거니까. 곧 죽을 것 같이 힘들더라도 사십까지만 버텨보면. 그러다 오십 되고, 육십 되면. 백 살 되면. 그게 장생하는 거지 모. 그게 장땡이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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