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안전한 안식처
난 왜 도서관을 그저 이렇게 좋아해버리고 마는 걸까. 도서관에서 작게 웅성이는 사람들의 음성, 책들이 가득 쌓여 있을 때에만 맡을 수 있는 종이 냄새, 천장까지 닿을 듯 높게 자리한 책장, 그 틈새로 보이는 사람들의 실루엣, 모든 경계를 내려놓고 온전히 책상에 무게를 의지하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외로운 나무 그늘 아래 더운 여름 목을 적셔줄 음료 자판기까지도. 그냥 좋아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고요하고 안전한 사람들 속에 있기 위해 칠팔월 땡볕 여름 더위에도 등줄기에 땀을 흘려가며 오르막길을 올랐던 중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마산 사람들은 마산시립회원도서관의 오르막길을 틀림없이 알 것이다. 오로지 효율성만을 목적으로 지어졌는지, 엄청난 경사를 등반해야만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다. 올라갈 땐 힘들어도 책을 잔뜩 읽거나 빌려서 내려오는 길은 또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혼란스러운 집안을 피해서 나는 책을 핑계로 도서관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는 나를 이유 없이 나무라거나 시끄럽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어른이 없었다. 평화가 그곳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도서관은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줬다. 운 좋게도 대학 3학년 때부터 도서관 근로장학생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당시 친구들은 임용 공부에만 매진하던 시기였다. 임용고사가 3차까지 있을 때라 들어야 하는 강의도 얼마나 많았던지. 인터넷 강의 수강료를 엄마에게만 의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하게 된 일이었다. 어떻게든 학비를 절약해보겠다고 컴활 1급은 책만 사서 독학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도 그 시간이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다른 곳도 아닌 도서관에서 일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재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빌려간 책을 제자리에 놓다가도 책이 재미있어 보이면 선 자리에서 책을 읽곤 하고. 신간이 나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못 찾는 척 교직원 선생님 앞에서 아주 꾀를 부리고. 책 카트를 정리하는 척 사라져서는 도서관 귀퉁이에서 책을 읽는 것 같은 것들. 공부에만 매진하는 친구들과 달리 일을 해야 하는 가정형편에 괜히 심술이 나서는 한 달 근무 시간을 채우는 내내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기도 했는데. 참 마음이 어렵다. 그땐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다.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면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도서관 교직원 선생님들은 그런 나조차도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뜯어 뜨거운 물을 부어 얇게 말은 커피 봉투로 휘휘 저은 것을 건네주시며 오늘의 안부를 물어봐주셨다. 아마 내 표정에서 다 티가 났을 테지만, 시험 준비로 조급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셨는지. 책 정리를 천천히 해도 되니 도서관 공용 컴퓨터로 임용 강의를 들으라고 말해주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들의 배려가 더욱 감사하게 느껴지는 건, 도움받는 이가 부끄럽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티 나지 않게 조금조금씩 도와주셨다는 거다. 지친 눈빛의 길고양이에게 츄르를 살며시 건네는 이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못 본 찰나 누가 책을 집어갈까 봐,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한아름 책탑을 쌓아가며 평화를 찾았던 열일곱 살의 나. 절실했던 도움을 기꺼이 받게 해 준 도서관 교직원 선생님들과 함께 했던 스물세 살의 나. 잡생각이 들 때마다 도서관에 놓인 수많은 책등을 어루만지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서른네 살의 나. 도서관은 그때도 지금에도 가난한 내 마음에 기꺼이 이야기를 내어준다. 어떤 모습의 나라도 차별 없이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