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게임
아날로그로 보드게임을 하는 것 나름의 손맛이 있지만, 매번 루미큐브 박스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아무나 붙잡고 한 게임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핸드폰이나 태블릿에 앱을 설치하여 온라인으로 루미큐브를 즐긴다. 마침 지금 시간이 되어서 나와 게임 타이밍이 맞은 세계 각국의 유저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것에는 왠지 모를 흥미진진함이 묻어 있다. 해당 유저의 국기를 보고 국적을 읽어내고, 아이디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을 해석하고, 스스로 만든 캐릭터 프로필에서는 그 사람이 가졌을 외양을 유추해내는 재미도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내게 주어지는 패를 읽느라 늘 바쁜 편인데, 유독 시작을 다정하게 하는 유저들을 볼 때면 존경심 따위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Good Luck!”
이 말풍선 버튼을 상대에게 누르고 게임을 시작하는 행위에는, 당장 본인의 패를 살피기보다는 상대방의 행운을 빌어주겠다는,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 게임 자체를 즐기며 하겠다는 겸양의 정신이 그 바탕에 있다. 나는 친구와 할 때 아니고선, 행운을 빌어준 적이 없기에 판돈을 건 게임에서 선 행운 후 게임을 하는 이들의 마음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늘 대단하다고, 또 고맙다고도 생각한다.
루미큐브를 시작할 때에는 '등록'을 해야 한다. 같은 수 3개, 또는 연속되는 수 3개를 30 이상 내야 등록이 완료되며, 등록한 후의 차례에만 다른 사람의 큐브에 내 것을 붙일 수 있다. 근데 이 룰조차 모르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레벨이 1이 아닌 것으로 보아, 그토록 레벨을 올릴 때까지 정확한 규칙을 모르고 했나 보다. 나는 한 턴에 60초인 스테이지를 자주 하는 편인데, 60초 동안 어리둥절한 그의 무브를 보고 있으면 복장이 터지는 것이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로 만나지 않았음을 다행이라고 여길뿐, 루미큐브에는 정해진 내용의 말풍선 외의 말을 할 수 있는 채팅 기능이 없기 때문에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내라는 미덕은 보너스로 얻는다.
등록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합해도 30이 되지 않아 게임 스타트를 끊지 못하는 때도 생긴다. 패를 받았는데 작은 수만 나오거나, 똑같은 컬러의 똑같은 수를 받는 경우엔 기분이 진짜 별로다. 오늘의 운세를 점치는 기분. 그럼에도 그 게임을 이기면, 오늘의 운세마저 이겨버린 기분이 든다. 운에 따라 결정되는 등록 시점. 등록을 하기 전까지는 초조한 마음이 앞서지만 일단 등록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게임은 더욱 재밌어진다. 상대방이 가진 카드의 개수, 내 카드의 개수를 비교하며 내 게임판 위에서 패를 이리저리 놓아본다. 딸깍, 딸깍, 패를 놓을 때마다 나는 소리가 꽤 경쾌하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내가 낼 수 있는 패, 지금 낼 수 있지만 나중에 내는 게 나한테 유리할 패, 상대방으로 인해 변화가 생긴 패를 살핀다. 그리고 내 차례가 오면 나 스스로와 약속되어 있는 패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게임판에 쫘라락 깐다. 그때의 쾌감이란. 마치 탭댄스를 추는 기분이다.
한 게임, 한 게임, 판돈 10,000 코인으로 알뜰하고 정성스레 모아서 어느새 1,200,000 코인을 모았다. 이 코인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내가 루미큐브를 성실하게 했음을, 이만큼 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일 뿐. 정말이지 쓸모는 없다. 쓸모 있는 일만 좇으며 허겁지겁 살기 바쁜 나에겐 어쩜 루미큐브처럼 쓸모없는 일을 하는 시간이 진정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쓸모없는 시간이 필요한 당신에게, 루미큐브 고수로서 하나의 비법을 선물하고 싶다. 그건 바로 패를 모두 꺼내놓지 말라는 것. 다시 말해서 나만의 게임판에서 패를 정리해두었다가 때가 되면 한 번에 모두의 게임판에 꺼내놓는 것이다. 내 인생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멋지고 날렵하게. 한 판씩 즐기다 보면 그리 되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