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보다 먼, 취미보다는 가까운
글쓰기 모임 과제로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을 봤다. 내가 해석하고 요약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포를 주의해야 할지도?)
버나뎃은 한때 건축상을 받은 유망한 건축가였다. 자신의 작품을 사들인 유명인사가 건물을 모조리 헐어버린 일을 겪고는 버나뎃은 큰 충격에 빠지고 모든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시애틀로 간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는 있지만, 건축이라는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창작자로서의 우울감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혼자 꾸리기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에 '만쥴라'라는 국제 비서를 고용한다. 사실 '만쥴라'는 실존 인물이 아닌 국제조직의 이름이었다. 이에 버나뎃은 국제범죄에 휘말리게 되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남편과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요양원에 갇힐 위기에 처한다. 이를 피해 창문을 열고 도망간 버나뎃은 딸과 함께 가기로 했던 남극 여행을 갑작스럽게 혼자 가게 된다. 사람들과 유람선에 갇히기를 자초하다니. 그런데 이게 웬걸. 그곳에서 만난 남극 연구원에게서 남극 기지 재건축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버나뎃은 남극 기지 건축을 본인이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또 해낸다. 와.
버나뎃은 용의 머리가 틀림없다. 마음만 먹으면 용의 머리가 될 수 있는 자.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질투가 난다. 나도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로 용의 머리가 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야 지금 하고 있는 따분한 일들을 모두 그만두거나, 그 일들을 취미로 삼으며 살 수 있을 텐데. 나에겐 그런 큰 재능은 없다. 신은 무심하게도 나의 재능을 분산 투자하셨다. 재능 몰빵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너무 위험한 투자였을까. 나는 노래도 제법 부르고, 기타도 제법 치고, 작곡도 제법 하고, 글도 제법 쓰고, 책도 제법 읽고, 컴퓨터도 제법 하고, 수업도 제법 하고, 영상 제작도 제법 하고, 키도 제법 크고, 얼굴도 제법.. 아, 마지막 건 아니지만. 암튼. 내 재능은 ETF 상품, 비빔밥 같다. 대형 성장주는 못 된다. 연금처럼 쌓는 재능이라, 수명이 다할 때쯤 내 재능을 알게 될 것만 같다.
쉽게 말해, 타고나길 용의 머리는 될 수 없게 태어난 것이다.(하필 또 뱀띠다.) 생애 내내 꾸준히 노력하면 용의 꼬리 정도는 될지 모르겠지만. 뱀의 머리를 자처하고 사는 편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더욱 도움이 되는 편일 것이다. 반짝여봤자 커다랗게 빛나지도 못할 조그만 여의주를 물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이무기가 될지언정, 허망한 꿈을 내려놓고 뱀의 머리가 되어 열심히 세상을 헤엄치며 사는 게 어쩌면 신이 주신 나의 운명이 아닐까. 스물넷에 교사가 되어, 서른 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다른 선생님들을 대표하는 부장교사를 하고 있으니 이미 뱀의 머리가 되었기도 하고. 무엇이든 머리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둘러싸서 패배감에 젖어들 때쯤 내 초라한 여의주들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묻어두기엔 '우리'들도 한 번은 반짝여보고 싶다고.
그때 이 생각이 스쳤다. 용의 꼬리도 되고 뱀의 머리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뱀의 머리로 돈을 벌어서 내 작은 재능에 투자를 하면 용의 머리나 비늘은 못해 용의 꼬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나는 용의 일부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난 내 버킷리스트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얼마 반짝이지 못할 알전구 같은 나의 여의주들을 일단 품어보기로 했다. 나의 미천한 재능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나 등단 작가는 될 수 없겠지만 스스로 단행본 작가가 되어보기로. 평론가가 되기에는 깊이가 없지만 재미있는 책을 알려주는 책스타그램은 계속해보기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발한 앱이 대박이 나진 않겠지만, 소소한 코드로 세상에 아주 작은 도움은 되어보기로. 그렇게 용의 꼬리가 되어보기로 말이다. 이름만큼 특별하게 살고 싶었던 마음을 내려놓는 만큼, 나의 작은 여의주들을 알알이 모아 따숩게 품어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