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책의 계절, 겨울도 책의 계절이어라
텀블벅으로 홍보했던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a.k.a 싶하보)>, 브런치북 공모전에 낸 <여의주를 품듯> 두 책이 세상에 나왔다. <싶하보>는 지난봄부터 싶하보 멤버들과 원격 및 오프라인, 블렌디드(?) 협업을 통해서, 브런치북 <여의주를 품듯>은 작년 이맘때부터 부비프글방에 참여하며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완성했으니 둘 다 꽤 장기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공저 책을 만드는 동안은 내가 멋진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 탈주할지도 모를 걱정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끝내 책을 만들고 심지어 영업에 큰 기여도 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그 뿌듯함이 다음의 영업을 하게 한다. 브런치북 <여의주를 품듯>은 사실 이번에 공모전에 낼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공모전에 내려고 보니 책이 초라해 보이고 구성도 엉성해 보이는 것이다. 이왕 하는 거 초라해 보이기 싫어서 친구에게 표지 디자인 의뢰비를 주고 부탁해서 아래와 같이 완성했다. 제법 구색을 갖춘 듯해서 안심된다. 암튼 <싶하보>는 텀블벅 목표금액 588%에 달성하는 대성공을 이뤘다. 후원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 사인도 주문했다. 작가처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더니 김훈 작가님의 것을 닮은 사인 시안이 도착했다. 좀 더 젊고 귀여운 느낌으로 수정해달라고 메일 답신을 했다. 나의 성공과 관련한 내 촉은 꽤 좋은 편이기도 하고. 출간 작가가 되면서 이제 책에 사인하게 될 기회가 부쩍 늘 것 같아 전문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의뢰한 것이기에 용기 내어 디자인 수정 요청을 드렸다. 태백이가 말하기를 이번에 받은 사인은 '정계 진출용' 같다고 했다. 그 사인을 쓰다 보면 진짜 그렇게 내 인생이 흘러갈 것 같아서 수정해달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껏해야 독립출판계의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것뿐인데. 하하. 물론 이것 또한 큰 욕심인 걸 안다. 솔직히 읽어주는 분들만 꾸준히 한 분, 한 분 끊이지 않기를 바랄 뿐.
수정 사인 시안이 도착했다. 날카로운 내 마음에 사포질을 한 듯, 둥글게 꼬인 덩굴 느낌의 사인이다. 먼 미래에나 열릴 사인회 연습을 하고 싶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사인받기를 자청해줬다. 책 초판본 실물을 보여주니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열정적인 팬이 되어 내가 받고 싶은 모양의 칭찬과 사랑을 듬뿍도 준다. 아이들 덕분에 콩나물 자라듯 내 기대도 자란다. 자란 기대만큼이나 내 두 어깨가 낙타 등 모양으로 솟는다. 이러다 진짜 스타 작가가 되면 북토크도 가야 하고, 낭독회 따위의 행사에도 참여해야 할 텐데 스케줄 조정이 가능할까, 어떤 제안부터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공상을 하던 즈음. 현실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독립서점에 입고 메일 보내기. 으악.
입고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흡사 좋아하는 이 앞에서 고백을 날리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과 매우 닮았다. 다만 상대는 하루에도 쏟아지는 고백을 받고 있기에 내 연둣빛의 초록초록한 말들은 화려한 장밋빛 고백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거다.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거절이라도 오면 좋을 텐데. 금요일 밤에 보낸 메일의 대부분은 아직 답장이 없다. 하긴 나도 한 서점에 메일을 보낸 게 아니고 오십 개가 넘는 서점에 동시 고백을 했으니 양심도 없다. 그래도 내 자식 같은 <싶하보>를 어떻게든 세상에 내어놓고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은데. 각 서점도 공간의 제약이 있을 테고, 우리 책이 모든 이의 마음에 들기는 어려울 테니 계속 마음을 학 접듯 접어보지만, 잘 안된다. 좋아하는 사람을 안 좋아하려고 애쓰는 마음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답장이 오지 않을까. 슬롯머신 바를 내리듯 메일 창을 계속 스크롤하며 새로고침해본다. 아무것도 없는 게 분명한 우체통 구석탱이까지 뒤지는 마음으로.
암튼 그렇다고 해서 우리 책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내가 평소에 책을 사러 일부러 찾아가던 서점들에서 “나도 <싶하보>가 좋아요.”라는 답장을 받기도 했으니. 너무 좋아서 지붕 위로 날아갈뻔했다. 너무 좋아서 태백이 등짝을 계속 때렸다. 너무 좋아서 태백이한테 맛있고 값나가는 밥을 사줬다. 내 좋음이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글도 사실 좋아서 쓴다. 어루만져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싶하보> 책등들의 마음으로. <싶하보> 바이러스에 푸욱 젖어서. 계속 이 마음이 촉촉했으면 좋겠어서. 아 좋으다. <싶하보>를 열심히 팔다 보면 브런치북 공모전 결과도 나오겠지? 어서 더 추워지기를,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맞는, 쌀쌀하지만 더욱 포근해질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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