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의 장래희망은 글 한 편이 되는 것
백수린 작가님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많이 바뀌었구나.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일이 생기면 말로 전해야 뿌듯함을 느끼던 나였는데, 이젠 이야기가 말로 휘발되어버릴까 봐 혹시나 글이 되지 못하고 그 벅찬 마음이 가벼워져버릴까 봐 입을 닫고 글을 쓰는 쪽으로, 내가 변했다는 걸 스치듯 깨달았다. ‘아, 어서 글을 써야겠구나.’ 그래서 갑자기 아이패드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리며 쓰는 글.
지난 주말 2022 서울퍼블리셔스테이블에 0.5 부스만큼의 셀러로 참여하고 왔다. 책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60여 권을 가져가서 사흘 동안 다 팔았다.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새로 나온 우리의 책 <싶하보>를 알리고 홍보하고 싶어 잔뜩 달뜨고 바빴던 마음이 이제야 좀 가라앉았다. 엄청 재미난 꿈을 꾸고 온 느낌이다. 글로 쓰지 않으면 날아가버릴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집중해서 기억해놓은 잔상들을 이곳에 남겨보기로 한다.
1. 2시간만큼의 설렘, 4시간만큼의 걱정
북페어 사흘 중 이틀을 참석했다. 북페어 둘째 날은 18~20시 2시간 동안, 북페어 셋째 날은 16~20시 4시간 동안 부스를 지켰다. 둘째 날의 2시간은 설레고 신나기만 했다. 그래서 <싶하보> 수건을 들고 흔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함박웃음을 날리며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인사 공격을 내내 했다. 얼마나 텐션이 높았으면 옆 부스 셀러 분들이 최고라고 엄지를 들어주실 정도였다. 나는 그 행동을 ‘수건 포포몬쓰’라고 이름 지었다. 다음 날도 ‘수건 포포몬쓰’를 선보이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돈봉투, 셀러 목걸이를 ‘예빈’님께 인수하려면 아침 일찍 행사장에 나와야 했다. 그래서 생각도 못하게 아침부터 행사장에 있게 됐다. 대학원 과제를 해야 해서 노트북, 교재까지 챙겨 와서 행사장 카페에서 파이썬 코딩을 했다. 책이 관심사인 사람들 틈에서 까만 화면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코딩을 하고 있자니 왠지 부끄러웠다. 이때부터였다. 항마력이 떨어진 것은. 텐션도 같이 떨어졌다. 갑자기 모든 걱정이 내게 닥쳐오기 시작했다. ‘재고를 담아놓은 종이상자가 다 젖었던데, 집에는 어떻게 가져가지.’, ’행사 마치고 철거하다가 별 일은 없으려나.‘, ’오늘 장사 잘 안되면 책 다 싸들고 가야 하는데 많이 무겁겠지.‘ 이런 줄줄이 사탕 같은 걱정들. 걱정을 하면서 책 판매를 시작했더니 얼굴이 잔뜩 굳어버렸다. 얼굴만 같고 표정이 다른 쌍둥이가 와서 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의 감정 변화였다. 다행히 책들이 잘 팔리면서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2. 둘째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조그만 외침
둘째 날, 셀러 활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C-20 부스를 찾아주세요!”
라고 외쳐버렸다. 그 시간에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분들은 나와 같은 셀러, 즉 작가님들. 하루 종일 17층 공간에서 책을 알리느라 진이 빠져있었을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기도 했고. 솔직히 책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기도 했다. 안하무인 안화용. 아마 이렇게 큰 행사장에서 내 책을 홍보해보는 게 처음이라 잠시 돌+i가 되었던 거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들 빵 터져 웃어버리고. 그렇게 둘째 날 마감을 했는데. 셋째 날 끝 무렵에 우리 부스를 기어이 찾아주신 작가님이 계셨다.
“어제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어요. 하루 종일 C-20 부스 번호 잊어버릴까 봐 애썼어요. 이번 북페어에서 딱 한 권만 사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 책이네요.”
라고 말씀해주시는 바람에 부끄러움이 뭐야 그냥 신나 버리고 말았다. 잠시 뒤에 다시 오셔서는 사인도 받아가셨다.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초보 작가로서의 내 설렘이, 두근거림이 그분에게도 좋은 기운으로 전해졌을 거라 믿는다.
3. 내 글을 우연히 펼쳐 읽고 책을 사는 독자를 목격하다
진중한 분위기의 남자 손님이 책을 집어 들었다. 종이 결이 어떤지 느껴보려는 듯 종잇장을 스르륵 손에서 넘기더니 한 페이지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내 글이었다. 내가 그 글을 쓴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다니. 한 편을 내리읽고는 결정한 듯 내게 말하셨다.
"이 책 한 권 주세요."
거기에서 나는 또 주접을 떨고 말았다.
"방금 읽으신 글 제가 쓴 겁니다. 하하하."
하루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건 좀 많이 부끄러운 기억인데. 그래도 진짜 행복했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감동이 차오른다. 글만 읽고 나를 택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4. 오프라인에서도 책방을 향한 러브콜을 보내다
행사장을 두 바퀴 정도 돌면서 매의 눈으로 책방 사장님들을 찾았다. 이미 입고한 책방에는 감사인사를 전하며 순회하고, 입고 메일은 보냈으나 아직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은 사장님들께는 명함을 드리며 구애의 몸짓으로 배꼽인사를 연신 했다. 러브콜을 보냈는데, 왠지 너무 촌스러운 방식으로 한 것 같지만도.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내가 언제 이렇게 한 장소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장님들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 연예인 본 것보다 훨씬 기분 좋더라. 한 번의 구애로는 부족할 것 같아, 내 구형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어 보내드렸다. 메일까지 합치면 세 번 구애한 건데. 이제 그만하고, 기다리자.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