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로 만든 기차

오직 둘만 초대받은 작고 아늑한 세계

by bookphoto

방학 때마다 엄마 아빠는 차로 꼬박 다섯 시간 넘게 가야 하는 안산 할머니 댁에 우리를 맡겼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성실하게 우리를 돌봐주었지만 가끔은 장을 보거나 교회를 가는 등의 볼일을 보러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들의 긴 외출이 있는 날이면 우리 자매는 기다렸다는 듯 식탁 의자를 눕혀 넘어뜨렸다. ‘이불 기차’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쓰러진 의자 위에 마치 모래성을 쌓듯 두꺼운 이불을 꼭꼭 눌러 덮고는 온 전등을 끄면, 우리만의 작고 아늑한 세계가 완성되었다. 이불로 만든 기차 칸 안에서 따뜻한 색의 손전등을 비추며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웃다 보면, ‘이불 밖의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을 거야. 우리 가족이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우린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거야.’ 같은 작은 소원들. 차원을 넘나들듯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겨 타며 소꿉놀이를 하는 중에는 이 마음들이 이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땐 이게 마치 우리 둘만 입장할 수 있는 파티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이젠 안다. 그건 불안을 떨치려는,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어떤 제례의식 같은 거였다는 것을.


어른들에게서 버려진 것만 같은 시간은 만만하게 흐르지 않는다. 여유롭게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무를 수 없다. 그땐 왜 우리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영영 버려질 것 같았던지.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동안 우리는 다시 괜찮아질 만큼만 슬퍼하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요령을 가지게 되었다. 집을 떠난 어른들의 발걸음이 다시 들리기만을 기다렸던 무수한 밤들을 지나면서였을까. 어린아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만으로 괜찮아지려면, 어른 없이도 슬픔에서 회복하려면, 하나의 규칙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한 아이가 울 때만큼은 다른 아이는 울음을 꾹 참을 것. 금방이라도 어른들이 곁에 돌아올 것이고, 우리 가족도 감쪽같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미소 짓는 엄마와 아빠의 손을 양손에 꼬옥 쥐고 우리는 거짓말처럼 언제 울었냐는 듯 함박웃음을 짓게 될 거라고. 물론 그런 소원들을 소리 내어 말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던 어린아이들은, 무구한 눈빛을 서로에게 보낼 뿐이었다. 지금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딱 그 정도만의 위로를 우린 할 줄 알았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건 없는 듯하다. 걱정이나 고민이 생기면 이불속으로 숨는다는 것이 그렇다. 홍콩할매, 링 귀신을 무서워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를 빼고선 난 늘 이불속에 숨는 게 좋았다. 365일의 대부분은 걱정과 고민으로 점철된 하루를 살아가니.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이불속에 숨어있는 편이다. 가오나시처럼 이불을 머리에 덮어쓰고, 달팽이처럼 몸을 넣고 빼며 날카로운 마음속 돌들을 막대사탕 녹여 먹듯 깎는다. 암흑처럼 시커먼 내 마음속이 사포질 되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고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걱정, 불안 따위에서 윤이 나봤자다. 그래도 좀 더 쓸모 있는 돌은 되지 않을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부분을 다 긁어냈다가는 내가 도리어 깎여나갈 것이기에 안전할 정도로만 반짝반짝 닦아보고 이리저리 모양새라도 내보는 것이다. 마음속의 파도를 재우며 돌을 가라앉히다 보면 밤바다처럼 내면이 고요해진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돌들이 심연 아래로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그렇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 물이 맑아지면 걱정과 불안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이불속에서 내 마음의 바다는 작고 아늑하다. 일곱 살 때의 내 작고 아늑한 세계에 닿아 있다. 물론 이 세계에 초대된 사람은 오직 두 명뿐. ‘이불 기차’가 데려다준 지금에서도 우리는 그 작고 아늑한 세계를 칠흑 같은 어둠에 봉인해놓고선. 그때와 닮은 눈빛으로 서로의 평화를 부른다. 사랑을 불어넣은 주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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