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피자 인턴기

시급 3400원으로 알게 된 것

by bookphoto

스무 살의 여름방학에 피자집에서 일하게 된 건 내 몫을 벌어 오라는 엄마의 특명 때문이었다. 과외를 구하려 전단지도 만들어 뿌리고 다녔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명문대생에 밀려 시장에 투입조차 되지 못했다. 애꿎은 문어발 전단지들만 전봇대에서 몸을 말리다 때가 되면 구인, 셋방살이 같은 다른 전단지에 덮였을 뿐. 당신들의 자녀는 사실 공부를 못하는 게 맞다고 매서운 팩폭을 원투, 원투 날리는 과외 광고 문구가 먹힐 리도 없었고.


과외가 구해지지 않아 이참에 여름방학을 놀면서 보내볼까, 싶었지만. 현실이 눈앞을 교차했다. 교대는 어느 대학교보다도 실습수업이 많았다. 비교적 싼 등록금 외에도 추가로 내야 하는 학비를 무사히 내려면 나는 노동을 해야 했다. 미소를 지을 줄도, 그렇다고 숙련된 노동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시급이 높은 알바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점주들은 이력서를 들고 벌벌 떠는 내가 뜨내기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 결국 남은 건 ‘미스터피자’ 서빙 자리였다.


왜 그 자리가 남아서 알바를 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까지 온 건지, 그 답은 일을 시작해보니 점차 알 수 있었다. 매니저는 내가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알려주었다. 음식물이 짓이겨져 눌어붙은 바닥과 테이블을 쓸고 닦고, 남녀 화장실 두 곳을 청소할 것. 그리고 식기세척기에서 뜨끈한 샤워를 하고 나온 식기류를 물 얼룩이 남지 않게 닦을 것. 샐러드바를 각종 샐러드와 간식류로 채우고, 탄산음료 가스통에 탄산가스가 충분한지 콜라를 조금 따라 맛도 볼 것. 식당에서 제공하는 피자와 음료로 식사를 대신할 것. 같은 것들. 듣기엔 학교에서 청소 구역을 맡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그냥 하면 될 줄 알았다. 여느 일이 그렇듯, 여기에 적히지 않은 일의 목록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일단은 누군가가 이미 입었는지 기름 냄새가 밴 유니폼을 입고 매장 안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부터 창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가 전시되는 느낌일 줄 알았다면 집에서 먼 곳으로 일을 구할 걸. 내 이웃들이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원하는 가게에 막상 내가 이렇게 서있는 느낌이 불편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괜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에 매장 천장 모서리에 있는 티브이만 뚫어지게 보다가 점장에게 일에 집중하지 않고 티브이만 본다고 혼이 났다. 그 이유는 아니라고 말하려다 더 혼날 것 같은 직감에 입을 다물었다.


다음은 저 알바생은 웃지 않는다고 어느 손님의 지적을 받았다. 삿대질은 덤으로. 내가 웃지 않아서 피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까 서빙한 피자가 뱃속으로 다 사라졌던데. 저 사람은 맛있게 잘만 먹었는데 괜히 돈내기 싫어서 나한테 딴지 거는 거 같다고 맞는 말을 했다가 부점장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주방 안으로 나를 부르더니 테이블에 가서 사과를 하고 오라고 했다. 그때 처음 배웠다. 돈을 버는 곳에선 미안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는 일도 가끔 있다는 걸. 내가 받는 시간당 3400원만큼의 사과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사과를 하곤 화장실에 가서 앞치마로 눈물을 닦았다. 지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거운 그릇을 나르다 손에 힘이 빠진 나머지, 30000원이 넘는 값비싼 치즈 크러스트 라지 피자를 서빙하다 바닥에 쏟았다. 그 순간 피자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테이블의 손님들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바로 눈치를 살핀 건 점장의 표정. 파이터 김동현을 닮은 외모의 점장은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눈물이 났다. 점장이 소리 지른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높은 강도로 열 시간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월급에서 까이게 되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혼나기만 했지만. 과소비를 한 날이면 그날을 떠올리게 된다.


비정규직의 기쁨과 슬픔을 대학생 때 알바를 하며 배웠다. 해이해진 것만 같을 때는 피자를 먹는다. 억지로 웃어야 하고 사과해야 해서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을 땐 스무 살 때 내가 지어 보인 시급 3400원만큼의 미소와 사과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 현재 시급을 계산해본다. 그래 이만큼만 웃어주고 미안한 척해준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틀림없는, ‘피자집 알바보다는 여기가 낫다. 버티자.’ 같은 말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는 진짜 지독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피자집에서까지 인턴제라니. 암튼 피자집 인턴을 하다 정규직원이 될 때쯤엔 나는 임용에 합격해 십 년 넘게 학교에서 버티는 중이라는 이야기. 피자집에서 기른 끈기와 인내 덕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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