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 달이 뭐야, 두 달도 족히 먹을 김치 3종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나 혼자 어떻게 먹으라고. 그래도 밥 잘 챙겨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정성스레 보내주셨겠다, 싶어서 눈물이 쏙 나왔다. 혹시나 양념이 새어나갈까 세 겹으로 밀봉된 채 여기 멀리까지 온 김치들. 한 겹씩 뜯어내니 한 겹만큼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냄새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멸치액젓이려나, 하며 이젠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엄마가 감으로 멸치액젓을 손바닥에 담아 배추 양념에 골고루 뿌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어떤 과학적인 과정으로 양념이 잘 섞이어 이렇게 엄마 맛이 나고야 마는 걸까, 감격하며 김치를 밥도 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엄마를 못 본 두 계절 동안 엄마 맛에 굶주려왔나 보다.
동생은 엄마한테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마 죽기 전에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멸치볶음을 만들어 놓고 가야 한다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싶다가도. 나는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반찬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찍어놔야지.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나도 엄마 맛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엄마와 나의 손 온도까지는 같게 할 수 없으니 손맛을 살리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다고 짐작해본다. 이런 부탁을 하는 동생이나 이런 계획을 하는 나, 둘 다 지독한 딸내미임에는 틀림없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살아갈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잠시의 상상만으로도 코가 아리고 시리다. 엄마가 없었던 시절의 기억은 없어서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엄마의 부재가 이토록 벌써 아픈 일일 테다. 엄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 세상의 조물주. 엄마를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엄마의 흰머리를 뽑다가 악상이 떠올라 건넌방에 가서 만든 내 노래가 있다. 내 나이의 여름도 지나가는 중이라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내 여름이 엄마의 겨울을 늦출 수만 있다면 좋겠다. 엄마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져 엄마가 신나고 행복했으면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못한다는, 그런 식상한 핑계를 대는 못난 큰 딸이지만 엄마 평생의 자랑으로 살고 싶다. 남은 생은 내가 엄마의 돋보기안경, 길 잡는 지팡이가 되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나부터 사랑하고 아껴서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겠지. 이제 보니 “사랑해요 엄마.”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쓴 글이었네.
소복하게 쌓였군요
그대의 머리 위로
야속하게도 잊혀져버린
그대의 이름 위로
여러 번 툭툭 털어내 보아도
꽁꽁 얼어붙은
세월을 뭉쳐 놓은 빙판 아래
흐르는 푸른 추억
그대의 눈물을 머금고
나의 계절은 한여름
그댄 소복하게 쌓이는
그 계절을
쓸어 넘기네요
엄마
그대에게 찾아온
겨울을 늦출 수 있다면
나의 여름을 드릴게요
우리 함께
여름에 머물러줘요
나의 한여름에 찾아온
그대의 화이트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