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부비프글방 주제문장으로 글쓰기
주제 문장
“루이스 부뉴엘에게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 스페인에서의 부뉴엘, 멕시코에서의 부뉴엘, 프랑스에서의 부뉴엘. 그리고 이 세 명은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가 그의 관점이 되며 결국은 관점이 이끄는 곳으로 가게 되기 마련이죠.“
- 우린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나일선
buvif
지난주 부비프글방에서 받은 주제문장이었다. 부비프책방 사장님께서 이 문장을 낭독하시는 동안 나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주제 문장으로 글을 쓰려다 포기하길 여러 번 결국엔 사소한 일기를 제출하고 말았던 요즘의 내가 아쉬웠던 찰나, 이번 글감이 꽤 맘에 들었기에 꼭 이 문장으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호기랄까 용기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쓰는 이 글.
가족들과 함께 마산에 있을 때는 그런 그런 게으름뱅이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멀리하는 동생보다 우대를 받았던 것이 크다. 고등학교 때는 평일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빨랫감을 한가득 들고 와 세탁기 앞에 던져놓고는 주말 내내 드라마와 예능을 실컷 보고 학교에 돌아가는 게 나의 게으른 주말 일과였다. 하루에 열두 시간 노동하는 엄마가 밤늦게 그걸 치울까 봐 엄마 퇴근 전에 내 동생이 다 치워주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기억이 난다. 뭐 사실 서울대 갈 정도로 공부를 엄청 잘했던 것도 아닌 주제에. 개학 즈음에 학교 가기 싫다고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노래를~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면 가족들은 진심으로 걱정한다. 저 게으른 애가 학교 가서 진짜 선생님 노릇을 한다고? 정말..? 진심?
학교에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줌(zoom) 수업으로 더욱 교사는 ‘동네 연예인’ 같은 것이 되었기에 매사 조심해서 행동하게 된다. 나는 보호자 분들의 얼굴을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아는 것 같은 느낌. 그 필이 있다.(예전에 헬스장 샤워룸에서 인사받은 적도 있는데 어딜 먼저 가려야 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암튼 요는 이거다. 방학 동안 집에서는 백수처럼 와식생활을 했더라도 개학을 하면 냉수마찰을 한 듯 정신이 돌아온다는 거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난 우리 반 아이들의 롤모델이다. 그리고 준 동네연예인이닷.” 커피 원두 굽는 게임에서 원두가 타지는 않았을까 싶어 핸드폰 앱을 켜볼까 고민이 되더라도, 학생들 앞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교육학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있는 책을 읽는 것이 곳에 맞는 사람이 되는 법.
곳이라 하면 나에겐 한 곳이 더 떠오른다. 바로 책스타그램을 하는 SNS. 2018년부터 책을 읽고 가끔씩 독후감을 올려온 곳이다. 처음에는 내 사진도 올리고 개 사진도 올리고 음식도, 여행사진도 마구마구 다 올렸는데 책 사진에 반응이 좋아서 언젠가부터 책스타그램으로 콘셉트가 확실해졌다. 이곳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아마 나에게 자극을 받고 싶고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싶어서 이 계정을 계속 보고 있는 것일 테다. 책스타그램에서의 멋진 나를 위해서는 현실 속 방구석에서의 지질한 나를 채찍질해야만 가능하다. 가상의 멋진 나를 위해 열심히 책을 읽어오던 현실의 나는 지난달에 번아웃이 왔더랬다. 번아웃이 온 나에 대해서는 SNS에 올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걸 알고 싶지도 않을 테고 그걸 올릴 기력조차 없기도 했고. 가상의 내가 너무 거대해지지만 않았음 좋겠다. 현실의 내가 허덕이게 된다. 그래도 영향력은 커졌으면 싶은데. 이게 무슨 모순되는 심리람.
곳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이 어떨 땐 비겁하고 변덕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떨 땐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변온동물처럼 살아야 살아졌던 세월들 때문이겠지. 오늘 글은 왜 이리 한탄스럽게 느껴지는지. 원래는 시적이고 우아한 글을 써내고 싶었는데. 쩝. 암튼 어찌 저찌 35년을 살아온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남은 생도 변덕스러우면서도 유연하게 잘 살아내길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내’ 마음이 이끄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