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

그래서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지

by bookphoto

열여덟 살 때 학교 축제에 작품을 내야 해서,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를 읽고 쓴 시였다. 그때의 나는 어릴 적부터 살던 도시를 떠나기만 하면, 그래서 오색빛 능선을 따라 떠돌다가 보면 꿈 같은 곳에 그저 당도해 있을 거라 여겼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며 살아야 하는 <역마> 속 주인공의 삶을 읽고 순간 찌릿한 느낌이 들었더랬다. 슬플수록 신나는 엿가위를 차면 이런 기분일까. 고향을 떠날 수 있는 주인공의 삶이 부러웠고,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콧등이 시큰하기도 했다. 순간 여러 감정에 벅차올라 내려쓴 시를 엄마에게 철도 없이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하이고 어매야 내는 갈란다.”라는 말이 반복되는 시를.


이 문장은 엄마의 짓무른 마음속 상처에 생채기를 내었을 테다. 그땐 이 시가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슬프게 할 줄은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엄마는 장삿일을 하는 중에 틈틈이 이 시를 꺼내보며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우리 딸이 가족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그래도 물먹은 발걸음이겠구나. 그럼에도 물속에서 걷듯 무거운 발걸음을 어떻게든 떼어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사랑으로 키운 딸은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구나. 큰 딸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많은 회한을 삼키고 미리 이별을 했을지. 나는 엄마의 마음을 감히 짐작도 못한다.


그새 많은 길을 돌고 돌았다. 마산, 대구, 그리고 여기에. 집으로부터 더 멀리 왔다. 가족 사이에 있어도 외로워서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 정작 도착해 버린 이곳에서 나는 또다시 외로워하고 있다. 과연 무얼 얻으려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글로만 그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없는 여기에서 다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더욱 그리워하기 위해 멀리 온 것일 뿐일까. 가끔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역마> 속 육자배기 가락 마냥 따라 흥얼거려 본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울 엄마는 지금쯤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을까. 습관처럼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트로트를 듣다 엄마가 그리워진 나는 겨우 글에 그리움을 써서 종이에 묻는다.


그리고 엿판 지듯, 무겁지만 곧 떠나려는 마음으로 이 시구를 다시 불러본다.


“하이고 어매야 내는 갈란다”


이 구절은 진짜 내 마음이었을까. 챙-,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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