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숨을 쉬는 게 힘들다. 가슴이 조여 오면서 심장이 딱딱해지는 느낌이 곧잘 든다. 사실 내 심장은 억울할 것이다. 잘만 뛰고 있는데. 피를 깨끗하게 하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걔의 입장에선 내 통증이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는가. 하지만 숨이 잘 쉬어지는 어느 날 어느 때면 숨 쉬듯 쉽고 반복적인, 작은 행운을 느낀다. 평소 자주 숨이 안 쉬어지곤 하기에, 자주 가슴이 답답해져 버리기 때문에 문득 가볍게 숨이 쉬어지는 날이면 그것이 그렇게 귀한 일이다. 오늘은 평소에 행운을 많이 쓰고 다닌 탓인지 행운의 농도가 희박한 것 같다. 숨의 무게가 느껴지는 만큼 힘들다. 의사 선생님이 주신 아침약, 저녁약이 있지만 그건 숨쉬기에 도움을 주는 약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알약들의 효능은 날 제때 깨우고 재우려는 기능뿐이다. 이것까지 의사 선생님께 말하면 또 어떤 색깔의 약이 약봉지 안에 더해질까, 싶어서 나는 그냥 있기를 택한다.
이 터널 같은 병에 끝이 있을까. 그건 겨우 하루 숨이 잘 쉬어질 행운 따위를 비는 내가 바라기엔 너무 큰 소원 아닌가. 내 우울함에 원인 따위는 없는 것 같다. 한 시간에 10만 원을 내고 상담을 받으면서 덜어낸 우울, 타먹은 약을 매일매일 부지런하게 먹으며 덜어낸 불안은 그날의 일과를 보내다 보면 언제 덜어냈냐는 듯 고스란히 채워진다. 내가 밝은 적이 있었나. 그런 의문이 들 때면 내가 햇살처럼 웃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진들을 부적처럼 꺼내어본다. 우울, 불안이라는 거 잠시 왔다 또 가겠지. 괜찮아진다. 괜찮아져. 스스로를 채근하지 말자. 내가 우울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자. 어느 날 친구가 내게 했던 그 말처럼 “사라지지만 말자”. 죽상을 하고 있더라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시야 안에서 머무르자. 그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안에 있자. 중얼중얼 되뇌어 보는 것이다.
게으른 토요일인 오늘, ‘언플러그드’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고 왔다. 8년 전의 내 모습이 무대 위 연극배우의 연기에 겹쳐 보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어 내 이야기를 돌려 돌려 말하듯이 부르고 다닐 때가 있었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쨍쨍한 햇빛이 쏟아지던 그 봄날, 앰프로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에 ‘내가 여기에 있구나’라는 걸 감각했던, 노래하던 날들이. 극 중 멜로디에 잊고 있던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풍의 작곡을 해내서 엄청 뿌듯했던 내용이었는데. 물론 가락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만, 꿈속의 내가 웃고 있던 것만큼은 또렷했다. 나, 노래할까. 내 노래를 듣는 관객은 우리 집 고양이 율무와 그 노래를 부르는 나 자신뿐이라 해도. 다시 노래할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쓴 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