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의 첫 글
때는 2012년. 대학 졸업 직후 교사 일을 시작하고 가장 진땀이 났던 순간은 동료의 질문에 적당히 솔직해져야 할 때였다. 직급상 동료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를 아울렀기에 대화의 주제는 꽤나 다채로웠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때면 갑자기 선을 넘는 질문이 내게 날아왔다. 진짜 나를 생각하는 관심에서 온 말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팝콘 같은 이야기를 건지려는 이유에서였을 거다. 어쩜 하나같이 피하고 싶은 질문들이었다.
“아버지는 뭐 하시고? 어머니는 교사신가?”
“아버지는 무직에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서 요양 중이고요. 어머니는 장사하시는데요.”
“그래서 집에 돈은 좀 있고? 교사 월급 가지고 살림 꾸리기 힘들 건데......”
“살림 꾸릴 생각도 없지만. 제 없는 살림에 보태주시게요? 오. 대박.”
스물네 살의 나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나라도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올 무례함에 대해 의연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경력 12년 차의 교사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다. 경멸을 담은 눈빛에 옅은 미소를 더해서 말이다. 과거의 나는 평범한 질문에 평범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다. 애써 괜찮은 척 대답하는 동안 나도 몰랐던 내 미천한 신분을 알게 된 것도 같았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쉬이 얼어버렸던 나는 참 놀리기 쉬운 사람이었다. 요즘엔 이런 질문을 실례로 여기는 분위기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해지는 게 어려웠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유복하게 자란 척 거짓말을 하자니 찝찝했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듣는 이도 계속 웃고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웬만한 불행도 웃으며 이야기하는 우리 가족들처럼 이들도 내 솔직함에 웃을 수 있을까. 솔직하고 싶은데 솔직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내가 나를 초라하게 여긴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도 싫었다. 적당한 대답을 고민하는 날이 늘어갔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같은 이유로 긴 글쓰기를 미뤄왔다. 함축과 은유로 나를 숨길 수 있는 시나 노래 가사를 쓰는 편이 좋았다. 그저 이건 노래에 불과하다는 듯 위장을 하고선 노래에 내 진짜 마음을 숨겨 부르면 되었다. 내 마음에 딱 맞는 노래를 찾기 어려웠던 날에는 자작곡을 지었다. 비슷한 결의 마음들만 알아챌 수 있을 암호 같은 가사와 코드를 넣었다. 말하고 싶지만 들키고 싶지는 않은 내 이야기를 노래로 전했다. 공연장 안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동하는 날엔 솔직한 나를 털어놓기도 했다. 말과 노랫소리는 공중에서 흩어지니까 좋았다. 적당히 솔직해지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다 반환점을 맞았다. 평소 좋아하던 김화진 작가님께서 에세이 쓰기 모임을 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다. 덜컥 신청부터 했다. 팬심에 펜을 들 생각을 하다니. 나를 소재로 에세이 쓰기를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에세이 숙제의 첫 주제는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나의 어린 기억들은 상처받은 크기대로 나란히 줄을 서서 글로 쓰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례를 건너뛰고 고른, 적당히 솔직한 글감으로는 한 문장도 쓸 수 없어 탈락시키기를 여러 번. 분했다. 뼛속부터 모범생인 내가 겨우 글 한 편을 내지 못하다니. 숙제도 안 한 주제에 작가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모임에는 계속 나갔다.
열패감을 이겨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모임을 다시 신청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글 한 편을 완성하고 싶었다. “저 드디어 숙제했어요!”라고 말하며, 작가님께 내 글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듯 우선 스스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쓸까 말까 망설여지는 기억을 만났을 때에는 스케치하듯 일단 써봤다. 쓰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들면 백스페이스 키로 지우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 뒤얽힌 기억을 헤집다 보니 이야기들이 솟아났다. 기억들은 어떻게든 이어져 있었다. 흩어져있는 단어의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다 보니 신기하게도 한 편의 글이 만들어졌다. 내 것이라 애정이 생겼다. 소리 내 읽어보기도 했다. 글은 공중에서 흩어지지 않고 온전히 종이에 남아있었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읽어줄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내 글을 공유하고 싶어서 책방 부비프의 글방에 등록했다. 내 솔직함을 읽은 글방 친구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책의 독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매주 글을 썼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은 안화용에 대해 적당히 솔직하지만은 않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2021년 여름에 쓴 글을 2023년 여름에 다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