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게 바치는 고백

by bookphoto

어렸을 적 경상남도 마산 우리 집 안마당에 눈이 오던 날은 손에 꼽을 만큼이었다.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 사라지는 진눈깨비도 눈으로 쳐줄 정도로 우리는 눈의 기준에 후했다. 한때 눈이었던 얼음을 모아, 눈사람이 되고 싶었을 얼음사람을 만들곤 했으니까. 강원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쪽 지방에 터를 잡게 된 엄마는 늘 눈을 그리워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도 북쪽을 떠올리는 엄마의 눈망울을 보면서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태생적 고향을 떠올려보곤 했다. 내가 태어난 곳의 정취를 기억하지 못하면서 향수를 느끼는 기분은 어쩐지 쓸쓸한 일.

경상도를 떠나 서울 인근 어느 도시에 산 것도 벌써 네 번째 해다. 눈이 내리면 이 눈을 어찌 치우나 하는 생각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몰래 눈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볼 때나, 그 눈이 땅바닥에 정직하게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하얀 눈에 내 손과 발이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사랑에 빠지는 상태라고 형용할 수밖에. 담백하고 간단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오늘처럼 느끼한 고백 편지를 눈에게 바치고 싶어지는 것은 단연코 눈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내가 쓰는 문장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페 창문 밖에선 더욱 거세게 눈보라가 친다. 겁먹은 다람쥐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어른과 환호하며 눈을 반기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대비된다. 면허는 있지만 직장이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운전을 미뤄온 덕인지 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에 더 가까워져버리고 만다. 눈이 와서 도로가 엉망이 되어도 내 마음은 그저 신날 뿐이다.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고 싶고, 눈싸움도 잔뜩 하고 싶고, 눈에 풀쩍 드러눕고 싶고, 떨어지는 눈송이도 먹어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보라 속에서 입맞춤도 하고 싶은데 좀 부끄러우니 아무도 없는 설원에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눈 위를 걷다 보면 내가 빙상 위의 스케이터가 된 것만도 같다. 눈이 넉넉히 쌓인 곳에서는 설인처럼 당당하게 위풍을 자랑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다. 바닥이 비쳐 보일 만큼 눈이 얇게 깔린 곳에서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깡충깡충 걸어 본다. 빙질을 확인하고 기술을 선보이는 스케이터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매섭게 눈을 판단한다.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집 건물 로비에 도착하면 왠지 뿌듯하다. 따스한 공기가 감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의 얼음 위 스케이팅을 복기해 본다. 그리고 다음 연기를 선보일, 또 다른 눈 내리는 날을 고대한다.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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