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왔다 율무

[프롤로그] 보물선과 항해

2023년 4월부터 써온 반려생활 에세이를 브런치북으로 연재합니다.

by bookphoto

고양이 율무가 우리 집 식구로 오기로 했다. 2023년 4월 9일에 입양을 신청해서 입양 신청이 승인되었고, 그렇게 율무가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은 2023년 4월 20일. 입양일까지 남은 날은 11일. 혼자 살던 집에 고양이 살림을 어서 들여야 한다. 마음이 바빴다. 감사하게도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독립출판 동지 에세이스트이자 프로집사 일락 님이 보내주신 장문의 카톡, 율무 임시 보호를 해주셨던 B님의 안내 메일이 있어서 시행착오를 줄여 율무 맞이를 준비한 것 같다. 내일이면 율무가 온다. 진짜 ‘내일’을 위해 열흘을 불태웠다. 얼마나 불태웠는지 내 계좌도 가벼워지고 만나지도 않은 율무가 계속 내 꿈에 출연해 소비를 장려하고. 암튼. 이번 글에서는 고양이 입양을 준비하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율무는 사람으로 치면 10대의 나이에 임신, 출산을 겪은 1살~2살령의 암컷 고양이다. 어떻게 보면 이른 시기에 가족을 가졌지만, 또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한 순간도 없었던 셈이다. 강아지만 키워봤던지라 내 폰 속 알고리즘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율무를 알고 만나게 된 거냐 하면. 그것은 ‘포인핸드‘ 어플. 내가 감히 무언가를 키울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물도 겨우 집에 들였다가 마른 채 내버려 둔 게 겨우 두 달 전의 일. 키우고는 싶지만 키울 수는 없어서 어플만 괜히 설치했다가. 껐다가 켰다가. 그렇게 어플을 만지작거리다, 몰래 마음이 가는 고양이들에게 하트 버튼을 눌렀다. 어쩌다 용기가 나면 응원 댓글도 달아보고 지우기도 했다. 고양이에 대한 거대한 짝사랑을 키워온 게 어느새 삼 년. 화면을 스크롤하다 율무색 눈동자의 고양이를 봐버린 그 일요일 밤. 댓글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될 거 같아 임보자 B님에게 문자메시지부터 보냈다. 율무를 키우고 싶다고.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거였다. 대학원 수업도 다 안 들은 주제에 고양이 모시는 게 먼저라고, 일락 님이 추천해 주신 육묘 상식 영상을 틈만 나면 아이패드에, TV에 틀었다. 메모리를 풀가동한 컴퓨터가 윙- 하고 열을 내며 돌아가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헤집는 듯, 머리가 아팠다. 뭘 사야 잘 산 걸까.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좁은 거야. 좁아서 다행인가. 좁아서 더 살 수가 없고 다행히 내가 돈을 다 써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집이 작으니까 장바구니를 채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구나. 우리 집 더 커졌으면 좋겠다. 아니다. 월급이 동결되었으니 집이 커봤자 관리비만 더 나오지. 횡설수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며칠이 흘렀고. 율무가 우리 집에 도착해 버리기 전에 나는 집사로서의 소양을 갖춰야, 우리 집은 율무가 살 곳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사람 집이 아닌 고양이 집으로 변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처음엔 설레는 마음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일락 님의 카톡, B님의 메일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고양이 보물지도. 바로 거기에 답이 있었지!


보물지도를 따라 쇼핑을 한 그 며칠 새 우리 집은 율무 보물선이 된 상태. 율무만 탑승하면 고양이의 항해가 시작되는 건가 싶은데. 택배박스는 엄청 쌓이고. 박스를 갖다 버리면 엊그제의 내가 주문한 택배가 또 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택배 안 내용물을 집 안에 들이면, 율무의 점프력이 어느 정도일 지를 몰라 180cm의 방묘문을 설치한 우리 집은 흡사 벨트가 채워지지 않는 어떤 아저씨의 불뚝 튀어나온 배처럼 겨우 잠겨 있다. 이걸 보물선이라고 해도 되나. 나 원래 미니멀리즘이었는데. 우리 집 용량이 가득 찼다. 이거 큰일이다. 고양이는 모르는 척 반겨주는 이의 환대를 좋아한다는데, 나는 너무 대놓고 마음을 듬뿍 고백하는 집사라 율무가 부담스러워하진 않으려나. 걱정이 된다. 내일이면 임보자 B님과 그의 임보 동료가 율무를 데리고 집에 오는 날인데. 우리 집 꼴이 참 우스꽝스러워서, 오늘도 퇴근하면 나는 택배가 잔뜩 쌓여있는 집을 맞이하겠지. 과한 것보다는 부족한 게 낫다는 내 신념은 고양이를 집에 들이면서 우수수 무너졌지만도. 그래도 고양이가 좋아하는 편을 택하련다. 오늘부로 쇼핑은 마쳤으니. 이제 어서 나의 물건들과 고양이의 물건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텐데. 내일 출근 안 하고 율무 만나는 준비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집사는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이 밤 불태워 준비해 보련다. 율무와 함께 할 보물선의 순탄한 항해를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