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율무를 키운 지 어언 스무날이 넘었다. 할 일이 없을 때 원래는 티브이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때웠지만, 율무가 온 이후로는 그보다는 가만히 고양이를 보고 있게 되었다. 이 고양이는 개에 익숙하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참 생경하게 느껴지는 행동을 해서 초보집사인 나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뿐인 율무를 보며 벙-찐 채로 계획에도 없던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고양이 관찰기를 여기에 풀어보고자 한다.
1. 집사를 은밀하게 관찰하는 고양이
고양이는 언제나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를, 티브이에 나오는 동물 친구(?)들을, 따뜻해진 날씨에 새로이 찾아온 날벌레들까지도. 고양이의 관심을 가장 끄는 것은 아마 그들의 집사인 듯하다. 요즘 부쩍 고양이 없이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인(人)기척, 아니 묘(猫)기척을 느낀다. 에이 설마, 하고 뒤를 돌아보면 틀림없이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다. 방 안을 우아하게 거닐던 고양이가 전신거울 앞에 멈춰 앉았을 때조차도. 실은 거울 너머의 집사를 지켜보고 있으니. 거울을 매개로 눈이 마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놀라면 고양이가 깜짝 놀란다고 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한다. 한 번은 진짜 심장이 멎을 뻔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다가 눈을 떴을 때였다. 낮은 높이의 침대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내 얼굴 앞에 눈을 동그랗게 뜬 생명체가 나를 근엄하게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놀라면 고양이도 순간 놀라 자기도 모르게 나를 할퀼지도, 순간 번뜩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며 다행히도 자는 척을 했다. 율무는 내가 자다가 눈을 떴다는 사실에 잠깐 눈이 동그래지더니, '잘못 봤나?'스러운 표정으로 안심하며 유유히 자신의 누울 자리로 돌아갔다. 앞으로 요런 순간이 더 많아지겠지. 고양이의 시선에 의연해져야지, 하는데 영 쉽지 않다.
2. 걸그룹 '카라'를 능가하는 고양이의 엉덩이춤
입양 첫 주, 하루에 한 번 사냥놀이를 하기에도 버거운 체력을 가졌던 율무는 이제 하루에 사냥놀이를 세 번, 네 번, 아니 그 이상을 하고 싶어 할 만큼 체력이 늘었다. 나는 원래 불면증이 있어 밤마다 자주 깨곤 했었는데 율무와 사냥하는 듯 놀아주다가 체력이 다 소진되어 이제 꿀잠을 자게 되었다. 이렇게 내 정신을 쏙 빼놓는 고양이와의 사냥놀이. 그중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 있다. 바로 율무의 엉덩이춤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정도의 거리에 보이다가 보이지 않고 곧 시야 안에 다시 보이는 사냥감(ex. 고양이 낚싯대)이 눈앞에 있으면 율무색 눈동자를 가진 율무의 동공은 까맣게 물든다. 그리고 곧 엉덩이춤을 실룩실룩 춘다. 조용필의 바운스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싶은 바운스다. 엉덩이춤이 시작되면 곧 율무의 동공이 까맣게 물든다. 아이돌 컴백 티저 영상만큼이나 짧은 분량의 엉덩이춤. 눈을 뗄 수 없겠지만 어서 시선을 옮겨야 한다. 율무의 동공이 모두 까맣게 변하기 전에 율무로부터 도망가야 하니까. 엉덩이춤을 또 보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고양이의 HP가 회복되었을 때 사냥놀이를 또 하면 된다. 체력이 곧 집사력이다.
3. 고양이의 기분이 먼저입니다, 고양이 퍼스트
개를 키우던 나는 동물만 보면 와락 안고 싶어진다. 그래서 고양이가 고양이인 것을 잊고 반가운 동물 친구에게 그저 손길을 뻗을 때가 있다. 운이 좋다면 고양이님이 잠시 참아주겠지만, 운이 좋지 않으면 고양이 인사법 ‘코 뽀뽀’를 생략하고 손을 내밀었다간 냥냥펀치를 맞을 수도 있고, 정말 운이 나쁘면 그 냥냥펀치에 날카로운 발톱이 탑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겪어봤다. 사실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서 비비지 않는 이상 집사가 먼저 만지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 대부분이지만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고양이의 영롱한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노래하는 인어에게 홀린 마냥 손을 뻗게 되는 것이다. 냥냥펀치를 제대로 두드려 맞고 손등에 살짝 스크래치가 난 이후로는 고양이의 기분을 먼저 살피게 된다. 앗,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너무 만지고 싶다면. 쥔님에게 츄르를 대령하여 쥔님이 츄르 황홀경에 빠진 사이 스리슬쩍 털을 쓰다듬어본다. ‘찰나’라는 말의 뜻이 이런 거였나, 몸으로 느낀다. 왜 현생에서는 반복재생이 안 될까. 아쉽구먼.
4. 갑분싸 갑분바(갑자기, 또는 싸고 나서 바쁨)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면 나는 잘 준비를 하고, 고양이 율무는 ‘우다다’ 뛸 준비를 한다. 고양이가 야행성 동물이기도 하고 특히나 율무는 길에서 생활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어두운 밤이 되면 늑대마냥 자신의 본능을 깨우게 되나 보다. 그래도 첫 며칠은 나와 친하지 않아서 침대 쪽에는 오지 않고 이리저리 방바닥에서만 뛰어다녔는데, 요즘은 우리 집에 익숙해진 터라 전자레인지가 있는 받침대에도 올라가고 내 침대에 올라와서 아주 의도적으로 나를 즈려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왜 저러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어서 인터넷 고양이 커뮤니티와 고양이 유튜브를 통해 알아보니 상상 속의 사냥감을 좇으며 질주하는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럼 율무가 사냥하는 어느 초원의 풀숲 정도인 걸까. 노래 ‘진달래꽃’의 가사를 생각하면 웃프다. 가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진짜 밟고 가시네요. 쥔님. 밤에만 우다다- 뛰는 것이 아니다. 똥을 싸고 나서도 동공이 까매진 상태에서 각성하여 갑자기 달릴 때도 있는데, 적에게 냄새가 노출될까 봐 멀리 뛰곤 하는 것이 고양이의 본능이라나 뭐라나. 신경질적으로 고양이 화장실의 모래를 퍽퍽 파내는 소리를 들으면 이건 곧 율무가 똥을 싼다는 거고 곧 우다다 달린다는 것이라, 혹시나 흥분해서 나를 공격하진 않을까 담요로 내 몸을 감싸게 된다. 소심하게 겁먹은 채로 움츠려있는 나(율무 입장에서 나는 거대 고양이)를 보고 실소를 짓는 듯한 율무를 보고 있으면 현타가 올 때도 있다. 나 너무 쫄보인가.
5. 꼬리 부르르
고양이의 꼬리가 긴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말을 하기 위함이다. 고양이가 항상 ‘야옹’하고 울 것 같지만, 진짜 필요한 게 있거나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고서야 우리 주인님은 소리를 잘 안 내신다. 대신 꼬리로 그림을 그리며 말한다. 집사라면 응당 주인님이 허공에 그리는 메시지도 해석할 줄 알아야 하니. 거기에 하나 더, 꼬리에 달린 털 한 올 한 올의 의미도 읽어야 한다. 기분이 좋을 때 고양이는 꼬리를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바짝 세우고, 대체로 호감이 가는 대상을 향해 꼬리 끝 부분이 살짝 꺾인다. 진짜 기분이 좋으면 꼬리가 진동하듯 부르르 떨린다. 집사 입장에서 ‘꼬리 부르르’는 엄청난 은혜를 입은 것이라서 이를 목격하면 다른 집사에게 자랑하기 마련이다. 나는 처음에 ’꼬리 부르르‘를 보고 우리 고양이가 전기에 감전되었거나, 또는 꼬리를 떨 만큼 나한테 화가 나있는 줄 알아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었다. 고양이는 나한테 좋다고 열정적으로 꼬리를 떨고 있는데 나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을 대했으니 고양이가 어이가 없었을 테다. 이제는 꼬리가 부르르 떨리면 천천히 눈을 감으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제 율무는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으면 천천히 눈을 감으며 고양이식 키스로 내게 답해준다. 꼬리가 떨릴 때마다 내 마음도 떨리는 것 같다.
나의 고양이 관찰기는 여기까지다. 앞으로 더 많은 걸 관찰하게 될 텐데. 잘 보면서 기록하고 또 기억해 두어야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순간들이니까. ‘나만 고양이 없어’ 시절과 비교하면 조용히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지금에 참 감사하다. 말이 안 통해서 오히려 고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어서 시끄러운 세속을 벗어나 율무가 있는 집에 가고 싶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