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고양이라는 동물의 습관이라는 게 참 묘하다. 고양이 스스로를 위한 습관이라기보다는 집사를 길들여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려는 수단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분명히 의도가 있다. 습관 속 숨은 뜻을 집사가 빨리 알아채주지 않거나 알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고양이의 요구를 후순위로 미룬다면 당신의 고양이는 잔뜩 화가 나서 당신을 노려보거나 화를 다스리고자 스크래쳐에 폭풍 스크래칭을 할 것이다. 우리 고양이도 그렇다. 그 습관을 따라가다 보니 어쩌다 고양이에게 길들여진 집사가 되는 데에 성공해 버렸다. 고양이를 길들이는 데에는 실패하고 매일매일 집사로서의 작은 성공을 하며 살아가는 덕분에 우리 ’율무‘는 아주 행복해 보인다. 물론 나도 고양이의 하수인이 된 것에 꽤 행복감을 느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지는 말라. 지금의 내 모습이 곧 당신의 모습이 될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아주 치밀하게 집사를 길들이는 데에 성공한 고양이 ‘율무’의 습관에 대해서 소개해보겠다.
1.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싱크대를 보고 길게 운다.
배가 고프다고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이라고 서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분명 밥을 줬기에 이미 밥그릇에 밥이 가득 차있는 상태인데, 고양이는 밥 냄새가 안 나는 척, 밥그릇을 못 본 척, 시선을 싱크대 너머에 두고 애달프게 울었기 때문이다.
"야-----옹. 야-----옹!"
입양 첫 주에는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율무'는 먹는 거 안 가리고 잘 먹는, 식욕이 왕성한 먹보 고양이라고 들었는데? 왜 내가 주는 밥을 안 먹을까. 집사가 맘에 안 들거나 이 집이 편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만세를 부르며 잠을 자고. 초조해진 나는 점점 집 안에 있는 모든 캔을 다 열어 '율무'에게 대령했고. '율무'는 이것저것 냄새를 맡더니 자신의 기호에 가장 맞는 밥을 골라 아주 맛있게 먹어 해치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금 '율무'가 뷔페식으로 밥을 먹고 있구나. 그것도 내가 먹는 식대와 비슷한 단가의 습식 여러 캔을. 밥을 안 먹어서 식욕 촉진제도 사서 먹였는데. 이따금 '율무'가 살이 많이 찐 것 같다는 지인들의 피드백도 들었다. 엇, 나 정신 못차리고 고양이가 해달라는 대로 행동한 거네. 정신 차리자, 하고 이제는 고양이의 건강 및 체중에 맞게 사료를 급여하는 중이다.
"야-----옹... 야-----옹..."
싱크대를 바라보며 슬쩍 눈치를 주는 '율무'에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응, 아니야. 내가 준 밥 먹어."
당분간은 집 안을 배회하며 맛난 요리를 찾겠지만 곧 '율무'는 주어진 밥을 맛있게 먹을 테다. 대신 그 아쉬운 마음은 격한 사냥놀이 후에 건조동결트릿(생선, 고기 등을 말린 간식)으로 달래주고 있다. 쥔님 건강도, 쥔님 총애도 모두 잡고 싶은 집사의 두 갈래 마음을 어찌하리. 어찌하긴, 어여쁜 울음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2. 집사와 놀고 싶을 때도 길게 운다.
옷장 안에 사냥놀이 장난감을 숨겨두었다. 평소에 보이는 곳에 장난감을 두면 고양이들은 쉽게 싫증을 느낀다는 것을 어느 수의사의 유튜브에서 보고 곧장 한 일이다. 옷걸이 모양의 장난감 수납함에 장난감을 차곡차곡 넣어 정리한 것이다. 사냥놀이 전에는 옷장을 열어서 장난감을 꺼내고, 사냥놀이가 끝나면 옷장에 장난감을 넣으니 '율무'에게 내 옷장은 보물창고다. 나와 놀고 싶을 때면 옷장에 가서 "야-----옹"하고 운다. 요구사항이 담긴 울음인 만큼 역시나 소리 내는 시간이 길다. 나는 늦은 밤중이나 이른 새벽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 울음에 답하며 사냥놀이를 하는 편이다. 사실 사람보다도 시간관념이 정확한 고양이인지라 그 울음을 내는 소리가 꽤나 일정하다. 지금까지 사냥놀이를 해왔던 시간의 통계를 내어 그 어느 평균 지점이 되면 우는 듯하다. 알람시계처럼 '율무'는 나를 부른다. 놀자고. 놀아 달라고.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율무'에게 가지 않으면 숨숨터널을 마구 때리고 있는 낯선 고양이를 마주할 때도 있다. 다행히 화가 난다고 나를 때리지는 않지만, 거울 너머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매서운 눈빛을 느끼고, 고양이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숨숨터널의 마찰음을 듣고 있자면 어느 알람시계를 들은 것보다 재빨리 나는 부지런해지고 만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고양이가 오늘밤만큼은 다시 울고 싶지 않을 만큼 격정적인 사냥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사냥당해 잘근잘근 씹히고 눈알도 비늘도 뜯겨 몸통만 건재한 물고기 장난감을 보다 보면 내가 고양이보다 거대해서 다행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이상한 데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사냥놀이를 끝내고 나면 참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잠드는 속도로 나도 잠이 든다. 불면증이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솔솔 잠이 온다. 다음 아침의 나를 깨우는 것 역시 고양이의 긴 울음이겠지만. 새로이 깨어날 울음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밤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3. 보고 싶은 존재의 궤적을 향해 길게 운다.
'율무'에게는 역사가 있다. 나는 가끔 알지도 못했던 '율무'의 어린 시간을 보고 싶고 그리워하게 된다. '율무'는 저 멀리 경상도의 한 마을에서 경기도로 왔다. 남쪽 마을 어느 공사장에 살던 '율무'는 한 살도 안 되었던 시기에 만삭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뱃속의 다섯 새끼를 키우기에 공사장은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을 거다. 그러다 정말 따뜻한 사람인 B님을 만났을 때, '율무'는 본디 성격과는 다르게 아주 살가워져서는, B님의 손길과 안식처를 구애했다. 그 시절 '율무'가 임보자 B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거고, '율무'의 새끼들 '생강', '찹쌀' 및 나머지 아가냥들도 좋은 곳에 입양처를 구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이 이야기를 B님께 전해들은 후 참 감사드린다고 말하니, B님은 '율무'가 스스로 기회를 잡고 좋은 상황을 만들어낸 거라고 하셨다. '율무'가 가장 보고 싶어하며 그리워하곤 하는 존재는 무얼까. 삭막하지만 자신에게는 익숙한 생활터였던 공사장 풍경이, 한 마리는 고양이 별로 떠났지만 나머지 네 마리 젖먹이였던 새끼들이, 가장 몸이 무겁고 고난스러웠을 때 자신의 가족에게 집 한 채를 통으로 마련해 주고 자신을 돌봐주기까지 한 B님과 그의 동료가, 종종 보고싶어지곤 했을까. 그리움은 한번 번지면 없었다는 듯 이내 닦아낼 수 없는 정취니까. 그 정취는 아마 B님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추었던 우리 집 현관문에 가장 물들어있는지. 무언가 떠오른 밤이면 '율무'는 현관문 방묘문에 앉아 그 존재들을 노래하듯 부르고 또 부르면서 기억하곤 한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율무'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려 바라만 본다. 곧 '율무'가 집사도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닫고, 그래서 왠지 미안해져 버린 표정으로 내 쪽을 돌아볼 때면 "괜찮아. 울어도 돼."라고 눈으로 말해주는 것. 그거 말고 그 긴 울음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음을 느끼며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내가 찾은 고양이의 습관은 결국 긴 울음. 우리 고양이가 관찰한 내 습관도 아마 울음이 아닐까. 집사가 길게 우는 날이면 우는 이의 코에 고양이가 코를 대어준다. 이 조그만 아이가 나를 위로해 주는 걸까. 궁금해졌다. 영국에선 별 희한한 연구를 많이 하던데 이 행동에 대한 해석이 있는지 구글링해봐야겠다. 그리고 난 아직 '율무'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어른이니까 덜 울어야지, 다짐한다. 고양이의 습관에 사람의 습관이 섞이어 우리의 시간은 곧잘 흘러간다. 어느새 우리가 함께한 지 한 달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