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다가 고양이와 둘이 살게 되면서 괜히 부지런해진 느낌이다. 화분 하나를 키울 땐 표면의 흙이 말라있을 때 물을 제때 주는, 딱 그 정도의 분주함에 불과했는데. 아마 내 생활을 지켜보는 눈 달린 이가 없었기 때문일까. 물만 주면 된다는 안온한 생각에 생명을 돌본다는 느낌이 거의 안 들었던 것 같다. 3년 정도 함께한 나의 화분 ‘식물이’는 그렇게 진짜 흙으로 돌아가버렸다. '식물이'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다른 존재를 돌보는 삶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불쑥 내 맘에도 내 집에도 들어온 고양이 '율무'는 이런 나를 단숨에 바꾸어놓았다. 고양이 집사가 된다는 것은 하루의 루틴을 새로이 만드는 것. 새로운 습관을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는 일이었다. 집사가 되면서 가지게 된 습관들을 여기에 소개해보고 싶어졌다.
1. 고양이로 인해 다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고양이를 돌보다가 상처가 생긴 집사들의 사진을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접하게 된다. 그 사진을 보다 보면 집사로서 내 얼굴에 날 수 있는 상처흔을 미리 그려보게 된다. 고양이 발톱을 깎다가 분노한 고양이가 내 몸과 얼굴을 할퀼 수도 있고, 캣타워에서 뛰어내리다 착지 지점을 잘못 선택해서 내 얼굴을 밟은 채로 발톱을 세울 수도 있고, 밤마다 우다다- 흥분해서 뛰는 중에나 집사 옆에서 자다가 악몽을 꾸어서 흥분한 채로 가만히 자고 있는 나를 공격할 수도 있고. 그럼 내가 봤던 사진에서와 같은 상처가 내게도 남겠지. 왠지 미리 비장해져 버리는 것이다. 냥모나이트 자세로 몸을 뚤뚤 말고 자고 있는 고양이는 참 예쁘기만 한데. 허나 언제 길고양이였던 시절의 본능을 깨우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두려움이 생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나는 내 고양이를 사랑해 주어야지, 자기도 순간 이성을 잃은 걸 거야.'라고 속엣말로 중얼중얼거리며 집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어본다. 방구석에서 혼자 심각해진 집사를 개의치 않고 '율무'는 이 시간의 할 일인 그루밍을 열심히 한다. 언제 걱정을 했냐는 듯 내 눈에선 하트빔이 발사된다. 하이고 예쁘다. 내 새꾸.(눈키스)
2. 풍부하게 채취한 맛동산과 감자를 보며 행복해한다.
어언 30년 전,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체험학습으로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하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난다. 다 자란 고구마를 일부러 흙 속에 넣어둔 건가 싶을 정도로 호미로 흙을 캐내면 줄줄이 달려 나왔던 고구마들에,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러왔던 느낌까지도. 요즘은 흡사 1일 2회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하고 있다. 고양이 화장실 속에서 '율무'가 열심히 덮어둔 모래가 동산의 형태로 모여 있으면 모래삽을 들고 '율무'의 감자와 맛동산이 그 동산 안에 있을 거라 자신하며 삽질을 해본다. 묵직하게 덩이로 올라오면 감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추억의 과자 형태를 하며 올라오면 맛동산이다. 일석이조라는 사자성어를 이렇게 변주하여 말하고 싶다. "일삽이변(便)" 그 수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운세는 대박이다. 아직 그 짜릿한 냄새까지 음미하며 맡아볼 정도로 '율무'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지는 않았지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궁인들이 왕의 '매화'를 경하하는 장면에서 요강을 끌고 아연질색하던 배우 이병헌 님이 떠오를 정도로. “색도 좋고 양도 적정하네요.” 우리 주인님에게 경하하는 눈빛을 보내본다. "쾌변을 경!하!드리옵니다."
3. 방구석 파파라치가 된다.
집사 자신의 셀카를 열심히 찍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내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것에 감흥이 덜해졌다. 사진을 찍기보다는 가만히 풍광을 바라보고 들려오는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카메라를 서랍장 깊숙한 곳에 넣어둔 지도 오래. 그 카메라를 꺼내보고 싶었던 적이 근래에 있었나. ‘율무’의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그 생각은 바뀌었다. 핸드폰 카메라로는 그 영롱한 눈동자가 잘 담기지 않는 거다. 그때 떠오른 나의 똑딱이 카메라. ‘맞아, 나 카메라 있었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충전기를 어찌어찌 찾아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서 카메라에 딸깍 끼워 넣었다. 빛을 조절하느라 셔터가 천천히 눈을 감듯 움직일 때면 ’율무‘는 내가 눈 대신 뷰파인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 셔터가 완전히 눈을 감을 때까지 카메라를 매개로 나와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움직이고 사라지는 시간을 잡아둘 수 있는 사진으로 ’율무‘와 나는 우리의 과거가 될 지금을 기록해 간다. 사진을 보다 느낀 건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것. 고양이 덕분에 내 사진을 다시 찍거나 찍히고 싶어졌다. ’율무‘와 함께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남겨둬야지. 우리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자고, 다만 천천히. 이 마음을 반셔터에 쏘아 올리고 율무에게 전해질 때쯤 셔터를 완전히 눌러본다. “찰칵!”
4. 안 하던 청소를 한다.
사실 난 깨끗한 편이 아니다. 집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하고 귀찮아하기 때문에 쓰레기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 이상 그때그때 쓰레기를 버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율무’가 오고부터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널브러진 물건이 있거나 쓰레기가 놓여있으면 그것은 필시 ‘율무’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나는 이를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게 된다. 쓰레기봉투가 어느 정도 차면 ‘율무’는 쓰레기봉투가 놓여있는 현관 쪽 방묘문 안쪽에 앉아 “아옹~”하고 늑대처럼 운다. “냄새나니까 집사야 청소해.”, “쓰레기들아 안녕? 너희한테 잡다한 냄새가 나는데 참으로 흥미롭구나.” 뭐 요런 불평이면서 인사 같은 의미를 담은 울음이 아닐까, 하는데. 그 울음의 뜻을 해석하다 보면 이내 결론에 이른다. ‘율무’가 한 말이 무슨 뜻이든간에 얼른 쓰레기부터 치우러 다녀오자. 내가 또 잠시 게을렀네. 그런 생각에 안 하던 청소를 요즘 부쩍 한다. 무엇보다도 집 안에서만 머물 고양이에게 청결한 공간은 필수이기에 집사는 열심히 주인님이 머무는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밥그릇도 씻고, 똥간도 씻고, ‘우다다’에 여기저기 뿌려진 모래를 정신없이 닦다 보면 집이 깨끗해져 있다. 주인님을 모시다 보니 집사의 공간도 깔끔해지는 Magic! 청소를 하면 기분도 좋아진다. 결론적으로 ’율무‘는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존재다. 흐흐. 고양이 최고얌.
오랫동안 의욕 없이 살았다. 출근도 퇴근도 밥 먹는 것도 하염없이 귀찮았는데 신기하게도 요즘은 퇴근만 기다린다. 심지어 집으로 가는 버스나 지하철을 어서 타려고 뛰어가기도 한다. 집에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으니까. 현관문을 열면 “애옹애옹-”, 내 앞에서만큼은 아가냥처럼 삐약거리는 ‘율무’가 나를 잔뜩 반겨줄 테니까. '율무'가 내가 정말 반가웠는지 배를 까보이며 벌러덩 누워서 허공에 대고 꾹꾹이를 할 때면 ‘율무’의 커진 동공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물에 던져진 설탕자루마냥 오늘 하루의 힘듦이 율무의 눈동자에 모두 사그라들고 녹는다. 퇴근은 달다. 고양이도 솜사탕처럼 달다. 나도 ‘율무’에게 달달한 존재일까. 서로에게 달콤해지고 싶어서 ‘서윗’한 습관을 만들어가는 요즘.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내 사랑 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