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현충일이었다.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을 떠올리는 걸 깜빡하고 늦잠을 자다가 10시에 울리는 경보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지난번 오발령 논란 경보 이후로 괜히 북쪽을 의식하게 되는 건지. 의도치 않게 늦잠을 자버려서 율무 밥을 얼른 챙기려 일어났는데 역시나 밤중에 사료 그릇 속 남아있던 밥을 진작에 다 먹은 율무가 울음으로 밥을 달라고 보챈다. 엄마가 읽으면 완전 혼낼 말이지만 사실 난 요즘 내 밥은 안 챙겨도 냥이 밥은 꼭 챙긴다. 근데 식욕 없는 내게 참 신기한 건 율무 밥을 주다 보면 내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난다는 것. 우렁찬 소리에 날 보는 율무의 시선이 느껴져서 소리를 잠재우려고 뭐든 챙겨 먹게 된다. 고양이는 진짜 사람 삶에 이로와.
율무와 함께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다가 엊그제 밤에 감은 머리가 너무 근지러웠다. 씻어야지, 씻어야지 하다가. 좀 늦은 시각에 씻으면 내일 아침에 안 감아도 되니까 개이득이라는 생각에 저녁 6시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머리 감기를 참았다.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율무가 왠지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는데. 6시 정각이 되었다.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머리도 몸도 깨끗하게 씻고는. 스킨로션도 상쾌하게 발랐다. 진작에 일찍 일어나 씻었으면 하루종일 뽀송뽀송했을 텐데. 게으른 나를 타박하려다 이제라도 좀 부지런해져 보고자 노트북을 켰다. 이번엔 나 혼자서 책을 내겠다고 책방 워크숍과 출판 멘토링 신청한 참이었다. 작가님과 함께 정한 숙제를 해야 했다. 그동안 쓴 글을 한글 파일에 다 모으는 것! 이미 세 번이나 사냥놀이를 해주었건만 또 놀아달라고 우는 율무를 달래 가며 파일을 완성하니 어느새 밤 10시 반이었다.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책 작업과 학교 부장 업무와 대학원 수강을 병행할 때 느꼈던 뻐근함이 어깨 부분에서 살짝 느껴졌다. 요 정도 통증에서 더 무리하면 엄청 오래 고생하니까 이제 멈추어야 할 때였다. 옷장 속 장난감들에게 인사하는 율무의 울음을 못 들은 척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이 떠졌다. 휴일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가. 아인슈타인도 휴일과 평일의 시간차를 느낀 어느 날 상대성의 원리를 떠올린 게 아니었을까? 핸드폰으로 5분 뒤 알람을 맞춰놓고 굳이 5분을 더 잤다. 알람보다 간발의 차로 율무가 먼저 울었다. 밥 달라고. 출근은 늦게 해도 율무 밥은 줘야 한다. 고양이들은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지방간이 쉽게 온단다. 집사는 게을러선 안된다. 우리 율무 간부터 챙겨야지. 밥까지 주고 똥간도 치우고 손 씻고 제시각 출근에 성공했다. 바쁜 일과 중에 다음 주 공개수업 지도안도 짜고 학생들 수행평가 채점도 해서 평가지 나눠주고. 이제 이번주 토요일에 있을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북토크를 위한 회의에 가는 중이다. 난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으면서 게으른 걸까. 제때제때 해놓을걸. 회의 가는 중에 글방에 제출할 글도 쓴다. 그래도 어떻게 다 하는 게 참 신기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