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사회 Mar 27. 2024

언제나 그 자리에 : ‘개나리 문학당’

인터뷰 : 톡톡톡 뉴스레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월의 어느 날, 첫 독서동아리 인터뷰를 위해 휘경어린이도서관으로 향했다. 지도를 따라 골목 사이를 걷다 보니 어렵지 않게 도서관을 찾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가 희미하게 들리는 웃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어느새 지하에 있는 ‘동아리방’ 앞에 도착해 있었고, 그곳에서 한참 열띤 토의를 하고 있던 ‘개나리 문학당’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인터뷰에는 적지 않은 인원인 6명이 함께해주셨네요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현주 | 현재 5개의 독서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꾸준히 독서하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독서동아리 활동을 전파하고 있어요.

강명숙 | 학부모 독서동아리에 참여하다가 아이가 졸업하며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고 싶어 다시 독서동아리를 찾아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민영 | ‘개나리 문학당’의 창설 회원으로, 모임의 산 역사입니다. 허덕거리면서 책을 읽더라도 함께 읽는 것이 좋아요.

이잔디 | 숙제하듯이 책을 읽는 독자입니다. 성실하지 않아도 눈치 주지 않는 이 모임이 좋아서 계속 나오고 있어요.

박신영 | 이번에 새로 합류한 연차 상 막내입니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정연 | 맘카페 회원의 권유로 모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면 뭐라도 하나 배워가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어요.



개나리 문학당은 어떤 독서동아리인가요?     


이민영 | ‘개나리 문학당’은 휘경어린이도서관에서 진행한 독서 힐링 수업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독서동아리인데, 벌써 만들어진 지 10년 정도 됐네요. 독서동아리 운영 경험이 없는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이라, ‘숭례문학당’의 독서동아리 모델을 많이 참고했어요. 그냥 무작정 따라 했다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모임 이름에도 ‘문학당’이 들어가요. 초창기에는 매주 한 권씩 책을 읽었는데 제가 너무 힘들어서 관두겠다고 하니까 당시 모임원이 “언니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나가지 마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합의를 잘 봐서 모임을 격주 진행으로 변경하고, 그때부터 격주 목요일 오전 휘경어린이도서관 동아리실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10이렇게 오랜 시간 독서동아리가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민영 | 처음 ‘개나리 문학당’이 만들어지고 몇 년 동안은 사적인 모임 없이 오로지 책 모임만 진행했어요. 그렇게 해야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초반에는 독서동아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더 노력했거든요.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식사 자리를 갖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독서에 대한 회원들의 의지와 긍정적인 마음이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어떤 모임이든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사람이 1~2명, 군소리 안 하고 따라가는 사람이 서너 명, 자릿수만 채우고 가는 사람 2~3명만 있으면 잘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김현주 | 이민영 님이 겸손하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저는 여러 독서동아리를 다녀봤는데, 그 경험을 통해 독서동아리마다 분명한 색깔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느낀 ‘개나리 문학당’의 색깔은 모임의 목적이 너무 분명하다는 거예요. 다른 분들은 잘 못 느끼실지 몰라도, 저는 이 독서동아리가 책을 읽어내려고 하는 의지와 열망이 굉장히 강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책을 함께 읽고 있나요?     


김현주 |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열하일기』에요. 프로젝트성으로 ‘개나리 문학당’ 회원이 아닌 분들과도 함께 책 읽기를 하고 있어요. 이 책을 같이 읽을 다른 독서동아리 회원들을 알음알음 모아 현재 15명이 『열하일기』를 함께 읽고 있죠. 3권으로 된 책을 4개월간 읽고 있어요.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을 기준으로 읽을 분량을 정하고, 소감을 카톡에 올려 인증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질문도 카톡에 올려 공유를 해요. 그리고 ‘개나리 문학당’ 회원들은 오늘처럼 오프라인으로 따로 모여 단톡방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토론을 이어나갑니다. 물론 ‘개나리 문학당’ 회원이 아닌 분들에게도 오프라인 모임은 열려있어요. 아까 자기소개에서도 잠깐 언급됐지만, 여기 계신 박신영 님도 다른 독서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번 책을 통해 ‘개나리 문학당’에 함께하게 된 회원이랍니다.     

강명숙 | 저는 개인적으로 열하일기 프로젝트의 좋은 점은 전용 카톡방이 있다는 점 같아요. 우리가 책을 읽으면 뒷골 '탁' 치는 내용이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근데 모임 날짜까지 기다리다 보면 그 느낌이 사그라지는데, 전용 카톡방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느낀 점과 소감을 나눌 수 있고, 덕분에 생동감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어 좋아요. 직접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과도 함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고요.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운영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민영 | 모임 참여 회원이 줄어들 때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희 카톡방에는 현재 회원이 9명인데, 그중에는 유령회원도 있어요. 모임에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유령회원들이 언제라도 모임에 편하게 나올 수 있도록 일대일로 연락하고 지내고 있어요. 추가로 덧붙이자면, 모임 책을 정할 때 장편 소설을 고르면 회원들이 장기간 출석을 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토지』 20권을 읽은 후에 바로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연달아 읽은 적이 있는데, 긴 기간 동안 같은 책만 갖고 토론을 하니까 한번 모임에 빠지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다시 참여하는 걸 많이 어려워하더라고요. 특히 한번 낙오된 회원은 다시 참여시키는 게 어렵다 보니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이렇게 참여를 어려워하는 회원들은 책 모임과는 상관없이 친교 목적으로 만나면서 챙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독서동아리에서 책 모임 외의 다른 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나요?


강명숙 | 1년에 2번 정도 책과 연계된 전시회를 관람하기도 하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중랑구에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갔을 때에요. 가을 단풍이 제일 멋있게 물들었던 날이라 특히 더 기억이 나요.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분들의 묘가 많이 있는데, 해설사는 멀리 나가지 않고 가까이 있는 묘들만 설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끼리 더 구경하고 싶어서 뒤쪽으로 이어져 있는 산에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무너진 비석과 묘지 사이를 막 헤치면서 다녔어요. (웃음) 그날 고생하고 내려와서 먹었던 막국수가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또 방문했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공원을 충분히 못 둘러본 게 아쉬워서 다음에 다시 한번 가자고 했는데, 그 이후로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어요.     

김현주 | 외부 활동은 아니지만, 저희가 코로나 기간에 ‘혜움’이라는 대학생 독서동아리랑 연합해서 온라인 모임을 한 기억도 떠오르네요. 이 활동은 휘경어린이도서관에서 주최했는데,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연령대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의견을 교류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어요. 그리고 ‘혜움’ 독서동아리 입장에서도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달리, 독서동아리 회원의 입장에 있는 연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경청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박신영 | 잃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얻은 점이네요.

이잔디 | 저도 마찬가지예요. 독서동아리를 하며 읽은 책이 한 권, 두 권 쌓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김현주 | 저는 얻은 것이 훨씬 많지만 잃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독서동아리의 원년 회원 4명이 있는데, 저희끼리는 함께 읽은 책도 많고 그만큼 마음의 양식도 많이 쌓였어요. 그래서 저희 4명이 대화를 하면 통하는 것도 많고 만족감이 굉장히 높은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하더라고요. 책을 통해 함께 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얻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조금 잃게 된 것 같아요.      

이민영 | 저는 사람보다는 책 읽는 맛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추천하는 술술 읽히는 베스트셀러 책들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싶어서 독서동아리를 하는 건데, 오히려 난도 높은 책을 주로 읽는 우리 동아리의 색깔이 저에게 많이 주입되다 보니까 쉬운 책에서는 읽는 재미를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는 꽤 수준 높은 책만 읽는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강명숙 | 저는 책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낼 수 있다는 게 얻은 점 같아요.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저희 딸이 최근 학교로부터 이번 학기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해야 한다고 통보를 받았어요.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인데도 딸이 미리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딸에게 겁먹지 말고 그 상황에 너를 맡기라는 위로의 의미를 담아 『열하일기』에 있는 구절(아래)을 하나 보내줬어요. 근데 결론적으로 딸은 야자 감독을 하지 않게 되었고, 저한테 “그래도 편한 게 좋아”라고 답장했답니다. (웃음)


“나는 오늘에서야 도(道)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도다. 마음에 잡된 생각을 끊는 사람 곧 마음의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거니와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것을 더 상세하게 살피게 되어 그것이 결국 더욱 병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 『열하일기2』 중



독서동아리에 관심은 있지만선뜻 참여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이잔디 | 최근에 도서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 콘텐츠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영상만 보고도 충분히 만족을 할 수 있겠지만, 책의 깊이는 영상과는 정말 다르거든요. 책을 읽지 않는 분들에게 그런 점을 어필하는데, 그래도 상대가 스스로 독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잘 설득되지 않는 것 같아요. 

박신영 | 저는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독서동아리를 찾아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평소에 질문이 많이 없는 편인데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질문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먼 이곳 ‘개나리 문학당’ 모임에 나오게 됐죠. 혼자서 묻고 대답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민영 | 저는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책은 독자의 선택이야.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고, 읽다가 멈춰도 되고, 도서관에서 책을 여러 권 빌린 다음 머리말만 읽고 반납해도 되고, 목차를 보고 흥미로운 부분만 읽어도 되고, 시간이 없다면 하나도 안 읽고 다 반납해도 돼.’ 그렇게 어떻게든 책을 접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럴 때 사람은 독서 모임에 나오게 돼요.




‘개나리 문학당’ 회원들은 인터뷰를 마치고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구는 직장인으로, 누구는 학부모로, 누구는 주부의 삶으로.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인터뷰하며 재미있는 추억과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팝콘처럼 팡팡 터졌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책이 빠지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개인 사정으로 인해 ‘개나리 문학당’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개나리 문학당’이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힘들 때, 필요할 때 걱정 없이 찾아갈 수 있는 독서동아리 하나쯤 있는 건강한 사회가 정착되길 기대해본다.



인터뷰 일시 : 2024년 2월 15일(목)

인터뷰 진행 : 윤이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 함께 읽기 소리를 찾아서 - 고정수 운영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