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에 저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를 리뷰 했었습니다. 한창 코로나-19가 광화문 집회로 인해 재 확산되면서 시끄러웠던 시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링크 글이나 링크 영상을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리뷰는 소설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파리의 기자 '랑베르'를 중심으로 쓴 내용입니다. 파리의 기자 랑베르는 자신의 이익(사랑하는 사람을 만남)을 위해 페스트에 점령당한 도시(오랑시)에서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헌신하는 리유라는 의사와 주변인들에 에 의해 점차 심경의 변화를 겪습니다. 결국 도시에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이 기회를 차 버리고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 돕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이 랑베르의 변화를 그림으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소설 [페스트]의 인물인 랑베르의 변화. 페스트라는 적을 두고 싸워나갈 때 그 참여 정도를 나타냈다.
굳이 이 리뷰를 다시 들고 오는 것은 또다시 발견되는 '코로나 이기심들' 때문입니다. 아래 두 기사를 보면서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를 통해 코로나 재확산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2.5단계로 격상,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영업자분들은 이 시기에 많은 피해를 입고 눈물을 머금고 사업장을 정리한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글날에 다시 모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집회를 주도하는 인물들은 '야외에서 집회하는 것이 올바른 방역 방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든 집회를 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싸워나가고 있을 때 그들은 코로나-19라는 적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마치 코로나-19라는 것은 자신과 무관한 것인 듯 행동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더 나아가 이를 이용, 악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허용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꼭 이러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그들이 내는 정치적인 목소리가 어떠한가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일반 대한민국 사람들이 볼 때 그들이 또 광복절과 같이 모여 집회를 한다면, 그 집회에서 내는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않을 테니깐요. 우리는 당신들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막고 경멸 어린 시선과 악의에 찬 말들을 보낼 것입니다. 제발, 자중했으면 합니다. 페스트의 랑베르의 인물과 같이, 부분참여자나 완전참여자가 되어 코로나-19에 함께 대응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