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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Nov 19. 2020

지금 감은 두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기를

소설리뷰

제 글을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영상도 보시고 좋아요와 구독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계속 책을 리뷰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https://youtu.be/FLHrWoveB2U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인적 없는 숲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해.


1904년 프란츠 카프카가 문학 친구였던 오스카 폴라크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그는 문학과 독서에 대한 의견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집에서 이 문장을 발견한 후, 좋은 책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내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은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카프카가 말했듯이 좋은 책은 나를 꼭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행과 불편한 진실을, 피할 수 없는 나의 약한 내면, 악한 내면을 마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사정없이 내 삶을 뒤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삶을 흔들었던 책은 이상의 <날개>, 이청준의 <소문의 벽>,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 루쉰의 <광인일기>, 카프카의 <변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프리모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 등, 감사하게도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왜 죄다 문학인가 싶지만, 채널 소개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소설가가 저의 꿈이었으며, 본래의 전공이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렸던 책 들.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제가 앞서 얘기한 “내 내면을 깨뜨리는 책”도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상과 카프카의 문학을 “뭔 소리하는 거냐”고, 난해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비판해 더 힘을 실어주었던 <에이트>가 누군가에겐 하나의 비전을 비춰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리뷰 할 책은 상당히 주관적입니다. 하지만 강력하게 추천 드리고 싶은, 현재 제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린 한 소설입니다. 바로 [지금 감은 두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기를]입니다.

https://blog.naver.com/sangeuy3232/221741760925


사실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왜 이렇게 마음이 아릴까, 그러면서도 내가 좋은 책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내 내면이 내리쳐지는 느낌이 왜 있을까를 알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며, 이 영상을 준비하며 저는 이유를 찾아나갔습니다.



1. 주인공 윤도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작가의 프로필과 주인공인 윤도윤의 프로필은 같습니다. 배경이 일본이다보니 일본소설의 한 종류인 사소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유명하고 대표적인 일본의 사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윤도윤은 22살 대학생입니다. 그는 12살 때 우울증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도 항우을증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국과 일본의 국제학교를 네 군데를 다녔지만 모두다 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검정고시 후 일본의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미쳤다”라고 표현하며 그 이유를 “세상이 먼저 미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행복“을 찾는 것이라 말하지만 도윤이 보기에 그 행복이란 곧 ”돈“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분배에 대해 불공평한 세상,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비판합니다. 또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결핍되어 버린 세상 때문에 눈물이 나고 우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이 모든 부조리들을 모르는 척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도 아버지 덕에 부조리한 세상에서 이득을 취하며 살아가는 편이기에, 자신을 역겨워합니다.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 주는 신체적 고통이 너무 무서워서 시도는 해봤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안락사의 합법화 여부와 그에 대한 뉴스입니다.



2. 도윤을 변화시키는 사람. 나츠코


이런 도윤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츠코와 타츠로상입니다.


학교에서 5교시가 끝나고 저녁의 어둠이 들어선 그때, 도윤은 자신의 삶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느낍니다. 자신에게서 가시가 돋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도윤은 눈물이 날 것 같아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누군가 자신을 본다면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손을 눈으로 가렸습니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얼굴은 알지만 한 번도 이야기를 해본 적 없던 같은 과인 나츠코가 서 있었고, “오츠카레(수고했어)”라고 인사하는 나츠코의 미소에 순수함이 가득 들어 차 있지만 이상히도 아련하고 또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순간 자신에게 돋치던 가시들이 사라졌음을 도윤은 느낍니다.


그 이후 도윤은 나츠코에 대해 호기심을 갖습니다. 같은 과의 유일한 한국친구인 서준에게 돌려 돌려 그녀의 존재에 대해 캐기도 합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전의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상처를 줬던 것을 생각하며 이 감정을 애써 확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녀와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는 이 감정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신은 나츠코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방학의 끝 무렵, 나츠코와 사귀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로 우울함의 증세와 더불어 손이 떨리는 증상이 심해져버립니다.


도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재단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할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의 느낌을 주는, 할아버지를 닮은 일본의 정신과전문의 타츠로상은 도윤을 변화시키는 주요인물 중 하나입니다. 한 동안 할아버지와 같이 도윤을 재단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타츠로상은 나츠코와 사귀면서 심해진 도윤의 증상을 듣고 잘 들어주던 태도를 바꾸어 이야기합니다.


정신과전문의로서 우울함과 자살을 생각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그리고 늘 혼자 있으려하고 자신의 세상에 다른 이를 들이려 하지 않는 도윤에게 “혼자인 건 함께 있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라고 말해줍니다.


물론 태도를 바꾼, 전형적인 정신과의사의 자세를 보인 타츠로상에게 도윤은 반발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그의 말들에 “속에서 무언가 와장창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말합니다.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진실을 다시 한 번 마주한 것입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환각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방어했던 도윤은 더 이상 그 방법으로도 위로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꾸는 꿈을 꿉니다. 그 꿈은 도윤의 어린시절, 그를 지금의 우울함으로 몰아갔던 한 사건의 재연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꿈에서 괴로워하는 자신를 위로하기 위해 환각의 방법을 이용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환각과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도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도윤에게 연락이 닿지 않음을 걱정한 나츠코는 도윤의 집까지 찾아옵니다. 그리고 나츠코는 혹시 자신의 과거를 알아냈기에 도윤이 연락을 안 받는 것이라 오해하며 자신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도윤은 나츠코의 고백 속에서 자신과 나츠코가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그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최근의 타츠로상과 있었던 일까지. 나츠코는 그런 도윤의 고백에 “그 슬픔이 얼만 큼인지 알 수가 없어. 난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서 그래. 그리고 나도 사는 게 힘들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는 않아. 슬픔은 다 다르니까. 하지만 둘 다 힘든 거면 서로 지켜주는 건 어떨까?”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기를 통해 “우리 둘다 해결 못할 문제를, 결핍을 짊어지고 있으며 서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내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되었고, 함께 한다는 것이 안정되고 위로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나츠코의 이 말들에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할 때의 자세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의 입장을 100%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어설프게 헤아리거나, 혹은 그 고통에 나는 상관없으니 연민을 느끼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더욱이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는 것은 최악이죠. 그저 그 힘듦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내가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함께 있음이 가장 큰 위로와 공감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츠코의 존재는 도윤이 스스로를 방어하던 껍질을 깨고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츠코의 말속에서 타츠로상이 말했던 “혼자인건 함께 있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던 타츠로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도윤에게 타츠로상은 “누구에게나 결핍은 존재”하며, 그 결핍은 “평생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죽을 수 없다면 누구랑 같이 걷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타츠로상의 말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결핍을 완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윤에게 나츠코와 같은 존재가 결핍을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100% 채워줄 수 없으나 함께 있는 나츠코는 그 결핍을 조금씩 채워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그리고 나의 이야기


저에게도 결핍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제가 기대하는 모습을 저버린 체, 저를 밀어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밀어내지기 전에 제가 그들 곁을 떠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거짓된 웃음을 보인체 도윤에게 싸구려 위로를 건네려 시도한 교회의 초등부 선교사와 같았습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저는 아직 그 일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그 그때의 상처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제 내면을 얼어붙게 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제 내면을 산산이 부숴버린 도끼와 같았습니다. 다시 그때의 기억을 마주하게 했고, 이것은 극복해야할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타츠로상이 이야기했듯이 이미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사실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결핍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보여주는 이 소설을 여러분에게 추천 드립니다. 도윤과 타츠로상의 관계에서는 왠지 영화 <굿윌헌팅>의 윌 헌팅과 맥과이어 교수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얕은 지식과 불완전한 신념이 합쳐진 ‘어리광’같은 말들”이 소설의 곳곳을 차지하지만, 그 불편함은 잠시이며 책을 덮었을 때는 그 모든 것을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도윤의 변화에 여러분들도 미소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 리뷰를 마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영상 시청 후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주신 힘으로 더 좋은 영상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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