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일상이 무너진 날
처음엔 무서웠지만, 물속에서 숨을 맡기는 법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포는 서서히 힘을 잃었다.
걸음마를 배우듯 호흡법을 다시 배웠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에 비닐을 쓴 듯 숨이 가빠온다. 몸은 기억한다. 괜찮아졌다고 믿어도, 기억을 거슬러 몸이 먼저 반응한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수영장에서 허우적거리던 순간들이 있다. 짧게 들이마신 숨이 마지막일 것 같았고, 다시는 공기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통나무처럼 무거워진 팔을 들어 침대 옆 테이블을 더듬거렸다. 간신히 휴대폰을 찾았다. 단축키 1번을 길게 눌렀다.
"엄마, 나 숨을 못 쉬겠어."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엄마의 '조금만'은 4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지만, 그 목소리 하나로 나는 버티고 있었다. 여름 끝자락의 더위 속,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20대 중반, 해외와 지방 출장으로 바쁘던 어느 날, 이름 없는 병이 나를 찾아왔다. 대학병원에서 수십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병명은 알 수 없었다. 결국 병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약도 없는 병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시간과 엄마의 밥이 서서히 나를 살렸다.
의사 선생님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나를 앉혀두고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의식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쉬었다 뱉어야 합니다."
태어날 때도 배우지 않았던 호흡법을, 스물이 훌쩍넘어 걸음마 배우듯 다시 배웠다. 몸은 분명 침대 위에 있지만,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렸다. 그 당시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나의 병명을 병원도 알지 못했다.
치열했던 사회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에서 보낸 그해 여름과 가을사이. 그 계절을 생각하면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가 같이 따라온다. 밥심이었을까?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어 갔다.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회사로 복귀를 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고없이 얕아지는 호흡이 두려워 수영을 시작했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물속에서 숨을 맡기는 법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포는 서서히 힘을 잃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호흡은 당연한 것 아니었다. 가장 삶의 기본이 되어야 했던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당연한 것에 대해 감사를 알았다.
우리는 일상 속 무탈함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까. 불안을 겪고 나서야 나는 무탈함을 돌아본다. 불안한 미래의 걱정으로 지금을 살지 못하던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나를.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다. 코끝으로 들어온 맑은 공기가 폐를 팽팽하게 채운다. 20년이 훌쩍 넘어 세상은 그 병에 '공황장애'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나에게 그것은 숨을 다시 배우고 당연함을 감사히 여겼던 시간이었다.
지겹게 내리는 장마가 끝나듯, 괜찮은 날은 결국 온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긴다는 건 비를 피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혼자 비를 맞고 서 있을 누군가에게, 나의 우산이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