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편의 자소서를 첨삭하며 느낀 것들
출간 막바지,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올 무렵이면 작가님들께 요청하는 사항이 있다.
“작가님, 책 날개에 들어갈 작가 소개글 원고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거의 다 잊혀가는, 전 직장의 기억을 슬며시 떠올리곤 한다.
현재의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편집장으로 일하기 전에는 전 직장의 업무 특성 상 자기소개서 첨삭을 다수 할 기회가 있었다. 백여 건의 자기소개서를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보기도 했고, 1:1로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하듯이 붙어서 자기소개 쓰는 걸 가이드하기도 했다. 내 일이 그러하다 보니 직무로서가 아니라 직장 선배들의 자녀, 직장 동료의 애인, 친구들의 개인적인 부탁으로 그들의 자소서까지 첨삭해주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자소서들을 읽으며 비슷비슷한 내용이더라도 ‘아 이 자소서 정말 잘 읽힌다, 눈에 띈다’ 라는 느낌을 주는 케이스들을 만났고, 그런 자소서들이 여느 자소서보다 어떤 부분에서 더 뛰어난지 분석하게 되었다.
대학교, 대학원, 회사 등 자신이 지원 하는 곳에 자신의 능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쓰는 자소서. 허위와 과장이 많아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고 비웃음을 당하지만, 어쨌든 써야만 한다면 같은 내용이라도 차별화된 표현으로 누군가의 눈을 사로잡아 보자. 필시 그렇게 공들인 자소서는 당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와 줄 것이다.
1. 더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라
내 글을 읽을 사람이 교수라거나, 회사 임원들이거나, 내가 지원한 분야의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표현이 위축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많은 지원자들이 자소서에 공손함과 예의바름을 넘어 ‘확신없음’에 가까운 표현을 쓸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에 자소서는 지원자,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스펙이나 수준을 갖춘 범위의 사람들과 경쟁하기 위해 쓰는 것이지, 내 자소서를 평가해줄 사람과 겨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당당하고 조금은 뻔뻔한 듯한 표현을 사용하라. 그것이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고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추측성 표현(~인 듯하다, ~인 것 같다 등)은 자제하고 우회적인 주장의 표현(~라고 생각한다.)이나 수동 표현(~라고 느껴졌다, ~라고 보여진다) 또한 최대한 덜 쓰는 편이 좋다. 차라리 “나는 ~라고 확신한다.”처럼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게 자소서에서는 매력적인 표현법이다.
2. 하려는 말, 중요한 말은 제발 앞에 하라
읽는 데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것 같고, 수사적으로는 별로인 것 같아도 중요한 말은 빠꾸없이 앞에 두는 게 좋다. 가끔 앞에 예시나 사례를 줄줄이 들고, 정작 해야할 말은 맨 뒤에 두거나 정말 자연스럽게 문단 한가운데에 두는 사례가 있다. 그런 글들이 읽다보면 당연히 좋고 잘 읽힐 테지만, 문제는 자소서 검토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독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특히 중간에 숨겨놓으면 아예 읽히지 않는 문장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맨 앞에 주제나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주입하듯이 박아놓고, 필요하다면 중간이나 마지막에 다시 언급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딱히 규제가 없는 경우 밑줄이나 굵기 등으로 중요한 정보와 키워드에 포인트를 주는 게 좋고, 드물겠지만 인쇄해서 제출하는 경우에는 형광펜이나 색깔 펜으로 표시하는 것도 좋다.(다만 줄을 그을 땐 반드시 자를 대고) ‘편법 쓰네?’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공식화된 규제가 없는 경우에는 이러한 사소한 센스가 차별성을 주고, 내가 꼭 전하고 싶은 정보를 누락시키지 않고 읽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3. 작더라도 증거를 첨부하라
자소서에서는 사례가 정말 중요하다. 이것을 쓰는 과정에서 과장과 허위가 난무하게 되지만, 특별한 사례를 만들기 위해 거짓으로 문장을 쓰기보다는 아주 작더라도 증거를 첨부하고 그 사례에서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서류 통과하면 면접을 봐야 하는데 거짓 사례는 들통이 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례는 일반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들고, 같은 사례이더라도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특별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확대하여 표현하는 것이 좋다.
“oo 박람회에 간 경험이 있다, 무엇을 보고 무슨 활동을 했다”처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어느 기업의 어느 부스, 어떤 담당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중 어떤 기술에 관심이 갔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어떠한 사고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 사고의 변화로 이끌어낸 결과물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4. 자소서를 읽는 건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라
물론 ai일 때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언젠가 (최종에서라도) 사람이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독자가 느낄 기분을 항상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게 좋다. 예의를 지키고, 불쾌하지 않은 표현을 쓰는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기본을 넘어 눈에 띄고 싶다면 감동을 주고, 진심을 담아야 한다. 감동을 준다는 건 같은 내용이라도 조금 더 멋있게, 특별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라는 것이고, 진심을 담는다는 것은 지원자의 간절함을 조금 내비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소서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다는 게, 진심을 담아 쓴다는 게 어색하고 무언가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실제로 자소서 쓰기를 지도하다 보면 의외로 이렇게 느끼는 지원자들이 많았다. 진심으로 이해는 간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편지 한 줄 쓰는 것도 그렇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을...) 그렇지만 자소서를 읽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비슷한 내용이라면 이런 감동적이거나 멋진 문장이 있는 자소서가 뇌리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편지처럼 사적으로 느껴지는 글을 쓰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별 내용도 없으면서 감정에 호소하고 수사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라는 것도 아니다. 정말 해야 할 말(설명, 논리, 팩트)95%에 5%의 감동을 더하라는 것이다.
5. 충분히 수정하라
자소서는 제출 기한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뭐라고 써야할지 몰라서, 귀찮아서, 막막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부랴부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티가 난 나머지 읽는 사람이 그걸 느껴버리는 경우가 있다. 쓰고 나서 단 한 번도 다시 읽어봤을 것 같지 않은 글.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면 자주 나타나는 오타들. 문장 호응이 맞지 않는 비문들. 이렇게 기한에 쫓겨 조급하게 썼다는게 티가 난다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글이 그러하듯 읽으면 수정하고 싶고, 또 읽으면 또 고칠 점이 보인다. 자소서는 평가를 위한 글인 만큼, 그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면 많이 고쳐야 한다. 여러 번 읽으면 오탈자도 보이고 더 나은 단어도 생각나고, 쓰지 않았어야 할 군더더기들도 보인다. 그리고 여유를 가지고 쓰다보면 써야할 중요한 정보들도 더 떠오르게 되어 알찬 자소서 작성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작성한 자소서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좋다. 전문가도 아닌데 봐서 무얼 하나, 뭔가 보여주기 창피한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글을 쓴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누군가는 잡아내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면 같은 입장인 자소서를 쓰는 사람들끼리 크로스 체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고쳐보고, 스스로 읽으면서 다시 퇴고하다 보면 완성도 높은 자소서를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