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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럼 Feb 20. 2023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김동근 인터뷰 下

우리는 서로에게 계절이 되어 주기엔 충분하니까요


"너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좋은 사람들과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어."

정성스럽고 사려 깊은 내면을 가득 담은 문장을 쓰는 작가, 김동근의 언어를 만나 보자.




Q8. 책을 준비하실 때와 마침내 첫 책을 내신 후의 마음은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어떤 작업인지도 궁금합니다.     


A8. 독자의 위치에 있었을 때는 작가 한 사람이 책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집필하면서 작가의 위치에서 바라보니 그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깃드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엄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걸치고 출간이 되었을 때 한량없는 보람을 느꼈지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성취감이었고 독자분들을 책으로 찾아뵐 걸 생각하니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것처럼 설레고 떨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글이 책으로 엮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좀 실감하라고 웃으면서 닦달하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글쓰기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 위로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고백적인 특성도 강해서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글을 씁니다. 연필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낱말들을 무드등이 번지는 종이 위로 사각사각 조합할 때마다 저도 모르고 있었던 제 마음을 손끝으로 만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아, 지금 내 마음이 이런 마음이구나. 그래,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됐었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이렇게 제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광의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과정들을 글로 녹여 사람들에게 공개했을 때, 공감대라는 하나의 지렛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어떤 가교적 역할까지 한다고 생각합니다.      


     

Q9. ‘꼭 모든 것을 혼자서 짊어질 필요는 없다’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위로받으실 거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힘든 일을 어떻게 흘려보내시나요? 말씀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시나요?     


A9. 당연하지요. 사람이 외발로 설 수 없듯이 저도 고마운 분들에게 참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10대 때 이야기인데 평범치 않은 가정사로 밖으로 겉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찜질방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중학교 저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아이와 우연히 찜질방에서 마주쳤습니다.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든 전우애처럼 서로를 얼싸안고 마주 보는 자리에서 방방 뛰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같이 매점으로 가 어른들이 술 한 잔을 찌끄리며 주름진 미간 사이로 인생을 푸념하듯 우리는 컵라면 한 젓가락을 하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아이에게만큼은 털어놓아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털어놓다가 저 혼자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는데, 양손을 팔짱에 끼고 가만히 앉아 듣고 있었던 그 아이가 침착한 목소리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아.” 저는 그 말이 사뭇 고맙고 반가워서 더욱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그 말에 위로를 느끼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 드넓은 세상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싶어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자신의 힘듦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밖에 없겠지요.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그 한 조각만 있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계절이 되어 주기엔 충분하니까요. 제가 독자분들의 짐을 직접 나눠 짊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제 글을 통해 그 무거운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죠.       

   


Q10. 작가님의 SNS에서 유독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은 글은 그리움과 사랑에 관한 글인 거 같아요. 현재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10. 사랑에 빠지면 모든 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유는 서로의 마음을 정독하느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누군가에게 왜 필요한 사람이고 구원이 될 수 있는지,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어둠 속의 횃불처럼 밝혀 주는 게 사랑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11. 독자분들과 댓글로 소통을 활발하게 하고 계십니다. 작가님의 진심 담긴 답글에 감동을 받으시는 분들도 많았죠. 글을 쓰시면서 가장 힘이 되는 원동력은 역시 독자분들의 반응일까요? 혹은 다른 원동력도 있으실까요?     


A11. 제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질문하신 내용대로 독자분들의 덕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듬성듬성 습작을 해 왔지만 제 글을 애정 깊이 봐 주시는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지는 못했겠지요.     



Q12. 작가님께서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쓰시는 작가님의 취향이나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A12. 제가 한결같은 면이 있어서 주된 관심사가 여전히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인데 요즘은 사진을 찍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중입니다. 지금은 시간 형편상 도저히 사진을 찍으러 다닐 여력이 되지 않지만 나중에 이곳저곳을 누비고 돌아다니면서 의미 있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카메라 앵글 속에 녹여 볼 작정입니다. 그게 저의 소소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Q13. 작가님의 에세이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은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인가요?     


A13. 일상에 지친 마음을 햇볕에 널어놓고 싶을 때, 건조해진 마음을 빗길 위에 세워 두고 싶을 때, 빗물에 젖은 마음을 안고 누군가 같이 울어 줄 사람이 필요할 때 이 책을 펼쳐 봤으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중 일부를 발췌한 건데, 이 내용보다 더 적절한 내용도 없는 것 같아 이곳에 싣습니다. 여러분의 밤이 길지 않기를.          



Q14.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만나 보실 독자분들에게 다정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A14.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출간으로 말미암아 에세이 작가로서 여러분께 처음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제 책이 여러분께 얼마큼의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땀 한땀 빚은 마음들을 이 책에 가득 실었습니다. 1부는 사랑에 대한 글을, 2부와 3부는 각각 위로와 사색의 글이 담겨 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웬 사랑 글일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랑에 대한 감미로운 언어로 푸른 하늘을 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거닐듯, 여러분들의 마음이 조금은 힐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었습니다. 부디 올 한 해 모두 행복하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계속해서 응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인터뷰 내용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잘 견뎌 왔다고.

그 누구도 당신처럼 그렇게 잘 견뎌 내지 못했을 거라고."


당신이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길 바라는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더욱 산뜻한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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