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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럼 Mar 13. 2023

『방랑기』 최형준 인터뷰 上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내가 이곳에 홀로 떠나온 것은 우리가 서로를, 

그곳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뜻이겠구나."

섬세한 유머를 구사하는 우아한 작가, 최형준의 언어를 만나 보자.




Q1. 최형준 작가님 안녕하세요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1. 

반갑습니다, 독자 여러분. 수필집 『방랑기』로 일 년 만에 인사드리게 된 최형준입니다.     

     


Q2. 부크럼 출판사와 세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셨습니다두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고 일 년 만에 신작을 내시다니정말 축하드려요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A2.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출간 이후 딱 네 계절이 지났네요. 입버릇처럼 시간이 좀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사이에 또 한 권을 새로 썼으니 아무쪼록 성실히 글을 썼다는 얘기가 되겠죠. 성실한 타입의 사람으로는 살아본 일이 거의 없는데, 글쓰기만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하게 되니까, 그럭저럭 천직을 찾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Q3. 이번 책의 제목은 앞선 두 권과 다르게 간결해서 더욱 인상적입니다. ‘방랑에 주목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A3. 

제목을 짓는 데에는 정말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충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동안 제목을 고민하는 일에 다소 게을렀거든요. 예를 들어 레코드에 관해 할 말이 있다고 치면, 말 그대로 ‘레코드에 관하여’라는 가제를 적어두고 한참이나 글을 써 내려가는 거죠. 처음에는 글을 완성한 뒤에 천천히 고민해 보자는 마음인데, 글을 쓰는 동안 꽤 기진맥진해져서 좀처럼 그러질 않아요. 뒷심이 좀 달린달까요.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줄줄 떠들어 놓고도 결국 ‘레코드에 관하여’라는 식의 싱거운 제목을 내놓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는 정직하고 간결한 제목이니까 나쁠 것도 없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죠. 

한데, 책을 만드는 일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 혼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목이라도 출판사 측의 생각은 다를 수 있죠. 부크럼 출판사와는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췄던 만큼 대체로 작업과정이 순조로웠어요. 그런데 책의 제목을 정하는 막바지 단계에서 급제동이 걸려 애를 먹었죠. 지난번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출간 이후 제목에 대한 호평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문에 피차 자연적으로 이번에도 좋은 제목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좋은 제목이란 게 당최 뭔지 알 수가 있어야죠. 끝내는 마감을 코앞에 두고 오직 제목을 고민하느라 하루를 꼬박 새우며 책에 실린 모든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어요. 좋은 제목을 찾기보단 원고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정확한 한 단어를 찾으려고 했죠. 그날 제가 출판사 측에 전달한 여러 후보 가운데 ‘방랑기’가 있었는데, 당일 아침에 출판사 측에서 그 제목에 화답했을 땐 정말로 기분이 좋았어요. 마침내 완벽한 옷을 입혀 주었다, 하는 실감이 들었어요. 완성이다, 하는 실감 말이에요. 가장 정확한 말을 찾아낸 거였죠.     


     

Q4. ‘왕성한 박력을 아직 다 소진하지 못하셔서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방랑하겠다고 책에서 말씀해 주셨는데요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방랑이란 무엇인가요?     


A4.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방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마음 한 켠에는 자기 자신조차 손 쓸 도리 없는 어떤 지독한 고집을 갖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 경우라면 오래도록 즐겁게 방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거기에 더해 비슷한 종류의 자부심을 지닌 동료와 함께할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진 일일 거예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양쪽에서 전속력으로 충돌할 때는 무슨 일이든 펼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5. 여름휴가에 관한 글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작가님의 문장에서 청명한 바다가 잘 느껴지는 듯했어요좀 이르지만이번 여름에는 어떤 휴가를 바라고 계신가요?     


A5. 

아, <나의 해변일지> 정말 좋죠. 제가 쓴 글이지만, 겨울 동안에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글쎄, 이번에는 조금 더 나은 여건 속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물론 주머니 사정 얘기고요. 가능한 한 긴 휴가를 떠나고 싶거든요. 바라는 게 있다면 그런 게 전부고,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겠다, 라는 계획다운 계획은 아직 세워두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제겐 언제 어디로 휴가를 떠나든 나무랄 사람이 없으니까요. 사실상 일전에 다녀온 휴가를 똑같이 되풀이한다 해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실 최근에 58면짜리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거든요. 내심 자주 쓸모가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Q6. 오며 가며 종종 봤던 카페 한 군데가 작가님 글로 소개되어서 반가웠답니다요즘도 카페 취재를 다니시나요책에는 싣지 못했지만꼼꼼히 취재하고픈 좋은 카페를 또 발견하셨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A6. 

여전히 여러 커피숍을 들락이고 있지만, 취재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대신 선택의 폭을 넓혀 극장이나 서점, 레코드숍, 호텔 같은 곳을 취재할 궁리를 하고 있어요. 조만간 도쿄에서 며칠 머무르게 됐는데, 머무는 동안에 틈틈이 파친코를 취재할 작정이에요. 얼마를 벌고, 얼마를 잃으며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쓰면 무척 재미날 거 같거든요. 

커피숍 취재는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카페를 추천하는 대신 그 책을 추천할게요. 여러 곳의 공장을 견학하며 취재하는 내용인데, 정말로 재밌게 읽었거든요. 인체 표본 공장이라든지, 지우개 공장이라든지, CD나 가발을 만드는 공장 등 살면서 가볼 일 없는 곳에 대한 글을 읽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어요. 제게도 그런 곳들을 견학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네요. 제가 공장에서 반길만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Q7. 이번 책에 실린 글 중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글이나 문장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7. 

<나의 해변일지>나 <센티멘탈 취재일지>, 또 <꽃을 찍는 일>도 좋지만, 무엇보다 프롤로그가 애착이 가요.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술술 적어나갔어요. 보통은 글을 적어나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생각이 꼬이기도 하고, 막혔다가, 뚫리기도 하고 요컨대 꽤나 격렬히 밀거니 당기거니 하거든요. 한데, 『방랑기』의 프롤로그를 쓸 때는 생각하는 속도와 글을 쓰는 속도가 서로를 앞지르지도, 뒤져지지도 않고 나란히 서행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죠. 이것보다 잘할 수는 없다고, 옳게 된 길 끝에 도착했다고 느꼈어요. 책을 쓰는 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어요. 




최형준 작가님의 이어지는 인터뷰는 2023년 3월 17일 금요일 18:00에 부크럼 브런치에서 만나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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