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함과 맹렬함 속에서 즐겁게, 최대한 즐겁게 살아 나가기를
"원래 이것보단 우아하게 산다.
오늘은 제가 좀 아팠으니 내일은 다시 해 봅시다. 다시 해 봅시다."
세 번째 에세이에 생활과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작가, 최형준의 언어를 만나 보자.
Q8. 작가님은 스스로를 ‘시종일관 슬퍼하는 사람’이라고 수식하셨는데요. 요즘은 어떤 일에 슬퍼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A8.
최근 며칠은 모처럼 평화로운 나날이에요. 추위도 가셨고, 한동안은 심각하게 걱정할 거리도 없어요. 지금쯤 인쇄소에서는 바쁘게 책이 만들어지고 있을 거고, 제 쪽은 가만히 앉아 책이 독자의 품에 안기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슬퍼하기보단, 너무 들뜨지 않도록 애쓰고 있어요. 며칠쯤 명랑한 기분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싶거든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전까지 하루 이틀쯤은 대책 없이 낭비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슬퍼할 일이 전혀 없지는 않네요. 자주 가던 메밀 국수집이 사라지고, 아끼던 카메라가 고장나고, 좋아하던 동네가 못 본 사이에 이상하게 변해있고 그런 일들이요.
Q9. 타인이 붙여 준 수식어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9.
반쯤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살면서 몇 번인가 금성무 배우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주로 남자들에게) 아무래도 그보다 과분한 수식을 듣는 일은 드물 테죠. 아, 웃기게 들려야 할 텐데.
Q10. 2022년에 진행했던 인터뷰를 찾아보니, 소설 쓰는 일을 쉬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소설을 쓰셔서인지 작가님의 에세이는 장면이나 내면 흐름이 유독 뚜렷하게 읽히는 듯했습니다. 어떤 소설을 쓰고 계시는지, 혹은 쓰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10.
어떤 소설을 쓰고 있냐면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뜨거운 여름날 서울 일대 레코드숍에서 총격전을 벌이거나, 한물간 재규어 세단을 훔쳐 바다로 달아나는 소설이랄까요. 호텔에 장기 숙박하며 무서운 꿈을 꾸는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돈을 주고 하품을 수집하는 여자의 이야기라든지 주로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 왔어요. 말이 되는 일과 말이 안 되는 일 사이를 가능한 한 능청스럽게 오가는 거죠. 쓰는 입장에서도, 읽는 입장에서도 그 모호한 경계로 인해 해방되는 구석이 있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제 경우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를 만나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고,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가라앉고 싶어지거든요.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한껏 멋을 부리고 밤거리를 거닐고 싶어지고요. 그런 식으로 제 소설이 독자의 내재된 어떠한 욕망을 자극하길 바라며 쓰는 때가 많아요. 차츰 빛바래가던 욕망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Q11. 책에 실린 사진들에서 작가님의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작가와 글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작가님께서 각각의 작품을 통해 주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A11.
양쪽 모두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입장은 아니다 보니,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때가 많아요. 하지만 글도 사진도 꼭 배운 사람만 하란 법은 없어요. 한계를 느낄 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요. 매 순간 똑똑한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직접 몸을 움직여 해결하는 게 가장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기도 해요. 몸을 움직이는 일(발레)은 어쨌든 제가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일이고요.
아무튼 전공이니 교육이니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도 일단 저는 사진에도 글에도 오래오래 관여하기로 마음을 먹어두었어요. 서로 다른 매체의 차이를 의식하기보단 ‘나의 삶’을 중심으로 양쪽 모두를 숙련한다는 자세를 갖추는 걸 우선으로 두고 있고요. 그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바는 위에서 소설에 대하며 말한 내용과 다름이 없습니다.
Q12. 꾸준한 집필과 출간, 그 외의 예술활동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12.
슬럼프를 운운할 만큼 대단한 커리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때로는 글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해요. 또 때로는 무엇이든지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에도 일희일비하는 일 없이 묵묵히 글을 써나가는 게 작가의 체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방랑기』의 작업 막바지엔 그게 조금 됐던 거 같기도 해요. 희망적인 플래그죠. 반복하지만, 저는 아주 오래오래 글을 쓸 거니까요.
그건 그렇고, 독자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는 걸 느껴요. 오직 독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몰두하고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거짓말이에요. 내가 쓰는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 내 글을 선물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거, 정말로 원동력이 되거든요. 그들과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오늘의 내가 가진 부족함은 크게 대수롭지 않아요. 부족한 모습이라도 허물없이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죠.
Q13. 어느덧 3월이네요. 올해는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출간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A13.
저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적당히 끝낼 줄 몰라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그게 기분 좋은 종류의 상상이라면, 계속해서 가슴이 부풀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조차 없어요. 요즘 하는 상상 중에는 낭독회와 전시가 있는데, 제가 생활하는 작업실에서 낮에는 사진을 전시하고, 해가 지면 낭독을 시작하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친구와 함께 구상 중에 있는 공연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마음 맞는 작가들을 찾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진 이름을 가진 문예부를 만드는 상상을 해요. 조급하게 해 나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만도 않을 작정이에요. 언제나 그랬듯 나는 약간의 모험을 좋아하니까요. 숲에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던 어렸을 때의 동심이 제겐 아직도 남아 있는 거 같아요.
Q14. 마무리하며, 세 번째 책 『방랑기』로 만나 보실 독자분들에게 사랑을 가득 담은 인사 부탁드립니다.
A14.
제가 하는 일은 대체로 자기 얘기를 마음껏 떠드는 데 그치지만, 그 배후에는 모두의 방랑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초연함과 맹렬함 속에서 즐겁게, 최대한 즐겁게 살아 나가기를.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유일한 것을 지켜 내기를 바라요.
여러분, 저는 아주 오래오래 글을 쓸 거랍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쭉 지켜봤는데, 이 작가는 30년 전만 못하다.’라고 가감 없이 비평해 주세요. 다른 무엇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보자는 말입니다! (하트)
"삶에는 상향, 표류, 추락. 이 모든 단계가 있습니다.
추락하는 단계에조차 낙하하는 즐거움이 있죠.
우리는 그러한 즐거움을 토대로
각자의 방랑기를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방랑하는 그의 나날에 깃든 푸르른 용기와 점잖은 결심들이
독자분들의 생활 또한 아름답게 채워 주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