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고 기약 없는 헤맴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러 국가를 다녔고 캐나다에 3년 정도 살아 본 적도 있었지만 연고도 없는 외국에 홀로 가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쿠바였다.
구글 지도를 쭉 보다가 발견한 ‘쿠바’라는 국가명이 아주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고 지인들에게 설명하면 남미의 끔찍스러운 치안 수준부터 시작해서 공산주의 국가, 한국 대사관 없음, 인터넷 불가능 등등 온갖 부정적인 정보들로 걱정 어린 질타가 이어졌다.
고백하자면 당시의 나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낯선 곳에서 무엇을 맞닥뜨리든 지금의 상황에서보다 심적으로 더 손해일 수는 없을 거 같았다. 평소에는 전혀 아무렇지 않지만 심한 독감에 걸리면 입고 있는 옷이 몸에 스치는 감각마저 서늘하고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처럼 당시의 내 마음이 그랬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결론적으로 2주간의 쿠바 여행은 평생 간직할 엄청난 깨달음이 되었다. 2주 동안 낯선 곳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헤맸다. 내가 혼자 서 있으면 언제나 먼저 다가와 준 쿠바 사람들과 손짓 눈짓만으로 즐겁게 소통했다. 온통 알록달록한 낡은 건물들과 올드카, 그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말레꼰 바다 등 이국적인 풍경을 보며 명상했고, 아무 식당에 들어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메뉴판에서 아무 음식이나 주문해 먹었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소설을 읽은 적 있다. ‘나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여행하는 중이야.’라고 말한 여자의 말을 들은 다른 여자는 깜짝 놀라며 대답한다. ‘어머, 나는 언제나 나를 잃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어.’
수도 아바나를 벗어나 어느 한적한 소도시에 머무를 때였다. 한낮부터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럼을 파는 카페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한눈에 봐도 우리 둘은 로컬이 아니었고, 서로 영어가 통한다는 걸 알게 되어 자연스레 합석해 대화를 조금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에서 왔고 이름은 미아였다. 직업은 유명인 스타일리스트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큐빅을 붙여 화려하게 꾸민 손톱이 아주 예뻤다. 시원스레 올려 묶은 포니테일도 쾌활한 성격과 잘 어울렸다. 미아는 3년간 동거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함께 살던 아파트를 임대로 내놓은 후에 쿠바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는 굿포유, 라고 답해 주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랑에 관해, 꿈에 관해,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관해 짧은 영어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무리할 무렵, 미아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네 이름은 이미 한국어로 뜻이 있는 단어야.
정말? 재밌다. 미아가 무슨 뜻이야?
미아는...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라는 뜻이야.
미아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어서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좋은 뜻이 있냐고.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고 미아는 나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Let’s be 미아.”라고 외치며 좋아하던 모습이 쿠바 여행의 한 자락이 되어 내게 오래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내가 나를 찾았는지 잃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한 건 아직도 헤매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비교하자면 무언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건 바로 내가 이 목적 없고 기약 없는 헤맴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태 모를 날들에 무한한 애정이 생겼다. 돌아보면 떠나기 전,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왜 그렇게 스스로를 날마다 새로운 우울감에 빠뜨렸는지. 이 오랜 감기를 치료하려고 쿠바에 다녀왔나 보다.
지금도 나는 일상에 지쳤거나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떻겠냐고 추천한다. 여행지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되도록 낯선 곳으로, 되도록 혼자. 매일 헤매는 마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여행지에서의 날들을 만끽하며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각자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아주 좋은 여행을 한 것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