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1.
스물두 살이었다. 당시 나는 방랑벽에 걸려서 도무지 집에 들어앉아 있던 날이 없었다. 눈 뜨면 집을 나갈 구실을 찾기 위해 평일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기도 했다. 고양이 카페 오픈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오후가 되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고깃집을 오픈하러 뛰어가는 식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알바비는 본격적인 방랑을 위해 쓰였다. 평소에 가고 싶던 동네나 지역을 체크해 두었다가 휙 떠나곤 했다.
어느 날은 1박 2일로 군산에 갔다. 그곳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 사진관이 있고 물짜장이나 매운 짬뽕을 파는 중국집 몇 군데가 유명하다는 걸 미리 알아 두었다. 그 외에도 철길마을, 동국사, 일본식 가옥, 역사박물관 등 볼거리들의 정보와 위치를 파악해서 적절한 동선을 짜 두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 둬야지만 움직이는 성격이라 내가 도착할 곳에 관해서는 웬만하면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획에 없는 곳을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동선대로만 다녔던 것도 아니다. 일단 여행지에 관해 알아야 떠날 수 있었을 뿐, 사실 나는 여행의 어느 시점부터는 일부러 내가 짜 놓은 동선을 이탈했다. 그렇게 하면 전혀 모르는 풍경들이, 주로 ‘관광’보다는 ‘생활’에 가까운 풍경들이 보였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좋았다.
첫날, 점심을 먹고 동국사 쪽으로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카페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간판을 읽고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음 동선을 모두 버리고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 심지어는 다음날도 그 카페에 갔다. 커다란 유리컵에 담겨 나오는 자두 스무디, 시도 때도 없이 내 테이블로 점프해 올라오는 뚱뚱한 고양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뜨개질로 책갈피를 떠서 선물해 주신 사장님, 그리고 손님들이 빼곡하게 남기고 간 나뭇잎 편지가 가득한 곳.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낯선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건 언제나 즐겁다.
그 카페의 이름은 ‘당나행’이다. 군산에 다녀온 이후 나는 당나행이 어떤 문장의 약자인지 주변 친구들에게 퀴즈를 내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이 퀴즈의 정답을 말한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당신과 나의 행복’, ‘당신과 나는 행복하다’ 등으로 ‘당신’, ‘나’, ‘행복’은 쉽게 맞추었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쓴 문장을 조합해 내지는 못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나는 오직 당나행을 가기 위해 군산에 두어 차례 더 가기도 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내려가서 당나행과 그 주변을 유유자적 떠돌다가 돌아오곤 했다.
2.
군산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일까. 나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에 로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그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른 아침, 배낭을 메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시간표를 훑어보고 곧 출발하는 버스 중에 제일 낯선 도착지가 쓰여 있는 것을 골라 티켓을 끊었다.
내가 고른 곳은 ‘신고한’이었다. 태백 방향으로 가는 버스의 정차지 중 하나였는데, 같은 노선에 있는 영월, 원주, 태백은 익숙한 지명이었지만 신고한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낡은 시외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린 후에 간이 정류장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나를 내려 주었다. 정류장 건너편에는 6층 정도 높이의 모텔과 작은 컨테이너에서 운영하는 분식집이 있었다. 그 외에는 그저 넓게 뻗은 찻길뿐이라 사실상 어디로 가야겠다는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로비에 비디오테이프가 가득 진열된 모텔에 체크인하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에 근처를 돌아다녔다. 현수막이나 길거리 전단지를 보며 알게 된 것은, 신고한은 주거지역도 아니었고 볼거리가 있는 관광지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근처에 위치한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려는 사람들이 주로 내리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택시가 많았고 신고한 버스 정류장을 몇 시간이고 얼쩡대는 건 나뿐이었다.
찻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커다란 운동장이 나왔다. 지금 지도를 보니 내가 갔던 곳은 고한생활체육공원이었던 거 같다. 이곳은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헛헛하던 중, 사람이 이용하라고 꾸며놓은 시설이 나오니 반가워서 나는 운동장을 따라 쭉 달리기도 하고, 철봉에 오르기도 하고, 어디선가 꼬리를 흔들며 나타난 들개랑 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해가 졌다.
어두워지자 길에 사람이 없는 것도 무섭지만, 길에서 사람을 만나도 그게 누구든 무서울 거 같았다. 모텔 근처 슈퍼에서 과자를 두어 봉지 사서 방으로 들어갔다. 구식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옛날 영화를 보며 과자를 먹다가 알람도 맞추지 않은 채로 스르륵 잠들었고, 깨 보니 아침이었다. 두꺼운 커튼을 열자 햇살이 방 안 가득 들어오며, 꽃무늬 벽지 여기저기에 슬어 있는 곰팡이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모텔 앞에 있는 컨테이너 분식점에 갔다. ‘김밥’과 ‘대왕 김밥’이 있길래, 대왕 김밥과 라면을 주문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사장님은 조리대 앞에 서기 전에 얇은 철사 머리띠로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싸악 넘겨 정리하셨다. 가스레인지에 타다닥 불이 켜지고 뭔가를 다지는 소리가 좁은 컨테이너를 가득 채웠다.
곧이어 내 앞에 놓인 건 그냥 김밥이었다. 한 개를 집어 들고 단면을 보니 정말로 일반적인 김밥이었다. ‘김밥’과 ‘대왕 김밥’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당장 물어보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궁금해할 거 같았는데, 문득 나는 이 여행에서 오랫동안 궁금해할 만한 것을 남기고 싶어졌다. 나는 대왕 김밥 한 줄과 라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먹었고, 떠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기억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에도 종종 대왕 김밥은 왜 대왕 김밥일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도.
3.
이 글을 쓰려고 동서울 터미널 버스 시간표를 봤는데, 지금은 신고한이라는 버스 정차지가 없다. 고한사북공영버스터미널이 그 자리에 세워졌다. 로드뷰를 보니 근처에 편의점도 생겼고, 또 다른 모텔이 지어졌고, 음식점도 몇 군데 들어왔다. 대왕 김밥을 파는 컨테이너 분식집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며 어떤 것은 사라지지만, 사라진 자리엔 곧이어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는 순환의 순리를 새삼 깨닫는다.
신고한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영 몰랐을 것들에 대해 나는 말할 수 있다. ‘네가 혼자 왔으니까 굳이 김밥을 크게 안 말아 준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음식을 조리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낙후된 건물이라 습기 관리는 되지 않지만, 로비에 재밌는 비디오테이프를 가득 꽂아 두고 방마다 비디오 플레이어를 놓아준 주인의 세심함을 알지 못한다. 그런 것에 오래도록 마음 쓰려고, 떠나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좋은 사람들과 내가 동시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려고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혼자 여행을 다녔나 보다.
당나행만큼은 여전히 계속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봄이 오면 군산에 가야 겠다. ‘당나행’은 ‘당신이 나보다 행복하길 바래’의 약자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뉴스들을 보며 한숨이 푹푹 나올 때, 사람들은 정말 왜 이렇게 악한 걸까? 심란할 때, 이런 간판이 달린 카페가 있다는 걸 떠올리면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위안이 된다. 동시에, 그러니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화도 난다.
내가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얻은 것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 올해는 그런 걸 좀 더 보고 싶다.